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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암문화대전 > 영암향토문화백과 > 삶의 주체(성씨·인물) > 전통 시대 인물 > 효자·열녀

  • 효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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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효성으로 부모를 잘 섬긴 사람. 조선 시대는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국가는 이들 덕목의 실천자들인 충신·효자·열녀들에게 관작을 제수하거나 정려(旌閭)로서 칭송토록 배려하였다. 영암 지역에는 많은 효자들이 기록과 정려를 통하여 전하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충·효·열의 기념비적 유적들이 남아 있은데, 정...

  • 문사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평(南平).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지낸 문서(文敍)의 7세손이다. 문사고(文師古)[1637~1701]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기상이 있어서 이웃 고을에서도 큰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다. 아홉 살 때 아버지 상을 당해 슬퍼하는 예가 지극하여 몸에 뼈만 남을 정도가 되었다.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문사고에게 고기와 맛난 음식을 권하였으나...

  • 문익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숙위(淑緯), 호는 대호정(帶湖亭)이다. 문익주(文益周)의 사촌 동생이다. 『영암읍지』에 따르면 문익행(文益行)은 “지극한 효성이 있어서 이후백이 사촌형인 문익주와 함께 여러 번 천거하여 벼슬이 참의에 이르렀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라고 한다....

  • 박유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 의사(義士)이자 효자. 박유원(朴有遠)은 영암 출신으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仁祖)를 호위하였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원지(遠之)이다. 장수 현감(長水縣監)을 지낸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14년~1487년]이 5대조이고, 아버지는 박재(朴栽)이다. 박유원은 1624년 이괄이 난...

  • 박응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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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인·효자. 박응원(朴應元)[1552~?]은 부모님이 병환으로 고생하시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한 효자이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선백(善伯), 호는 아천옹(鵞川翁)이다. 군수를 지낸 박성림(朴成霖)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박세장(朴世長)이고 형제는 박응형(朴應亨)과 박응정(朴應貞)이 있다. 박응원은 10세 때 아버지가 병환으로 위중하니 손...

  • 박지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박지검(朴之儉)은 18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규정(糾正) 박현(朴鉉)의 후손이다. 박지검은 부모를 모시는 데 효성을 다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는 대변을 맛봐 그 병을 진단하였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 살이를 하였다. 어머니가 학질에 걸렸을 때는 자신의 허벅지를 떼어 드렸고...

  • 서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서약(徐鑰)은 아버지가 편찮으시자 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다고 전해질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아버지는 서희노(徐希怒)이다. 서약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림(柳琳) 의병 부대의 비장(裨將)이 되어 전쟁터로 나아갔다.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고기를 먹지 않는 등 행동을 삼갔다....

  • 신경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감사를 지낸 신기(愼幾)의 8세손이다. 신경훈(愼慶勛)은 어려서부터 매우 효성스러웠고, 부모님을 섬기는 정성이 지극하였다. 또한 스스로 학문을 연마하여 세상에 모범이 되었다. 아버지가 병이 드셨을 때는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아버지께 드려 사흘을 더 연명할 수 있게 하였고, 부모님 상을 당하여 각각 삼 년간 시묘를 살며 밤낮으로...

  • 신사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신사준(愼師浚)[1734년~1796]은 성리학을 전공하였으며, 궁핍한 생활에서도 책을 읽어 경전에 두루 통하였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가 병에 걸렸을 때는 변을 맛보고 자기 손가락의 피를 내 간호를 하였고, 상을 치를 때도 예를 다하였다. 이러한 신사준의 효행을 보고 고을 사람들이 모두 공경...

  • 신성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여임(汝任)이다. 감사 신희남(愼喜男)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신광익(愼光翊), 동생은 신성필(愼聖弼)과 신성망(愼聖望)이다. 신성윤(愼聖尹)[1617~?]은 성품이 온후하고 부모님에게 예를 다하는 효자였다. 집안을 다스리는 데도 법도가 있었고, 살림이 어려웠으나 항상 예를 갖추며 지냈다. 1660년(현종...

  • 신성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감사를 지낸 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신광익(愼光翊), 참봉 신성윤(愼聖尹)이 형이다. 신성필(愼聖弼)은 천성적으로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를 타고났으며, 부모를 섬기는 정성이 매우 지극하여 이웃에서 칭찬하며 감복하였다. 학문에도 힘을 쏟아 예로써 행하며 몸가짐을 항상 바르게...

  • 신영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호는 산정(山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찬성을 지낸 신이충(愼以衷)이고, 할아버지는 통정대부로 이조 좌랑을 거친 신기(愼幾)이다. 아버지는 통례원 좌통례를 지낸 신후경(愼後庚), 동생은 신영명(愼榮命)이다. 부인은 이조원(李調元)의 딸 광주 이씨(光州李氏)이다. 신영수(愼榮壽)[1442~1497]는 진사에 합격하고 아버지가 돌아가...

  • 육만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육만태(陸萬泰)는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치질병과 담병(痰病)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고, 산에 올라가 노루를 잡아 아버지의 병을 구완하는 효행을 보였다. 본관은 옥천(沃天), 자는 래숙(來叔), 호는 은산(隱山)이다. 옥천 육씨 덕곡공파(德谷公派) 육보의 후손이며, 육세록의 손자이다. 육만태는 효성이 지극하...

  • 윤선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남(海南)으로, 감사(監司)를 지낸 윤복(尹復)의 증손자이다. 윤선술(尹善述)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더할 수 없이 애통했으나, 슬퍼하는 어머니가 염려되어 자신의 슬픔을 억누르고 밖으로 크게 표현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이었으나 항상 어머니를 위해 필요한 물건을 갖추어 놓았으며, 어머니가 병이 나 겨울에 생선을 드시고 싶어 하니 노복과 함...

  • 이정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인·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운(子雲)이다. 아버지는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낸 이주남(李柱男)이고, 형제로는 형 이정량(李廷亮)과 동생 이정빈(李廷彬), 이정찬(李廷讚)이 있다. 이정필(李廷弼)[1640~?]은 1672년(현종 14) 임자(壬子)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냈다.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공양하고 자식...

  • 정시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아버지는 첨사를 지낸 정지총(鄭之叢)이다. 정시교(鄭時僑)는 영암 출신이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노루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자식 된 도리로 이를 구하고자 백방으로 돌아다녔으나 얻지를 못하고 슬퍼하던 중에 노루 한 마리가 집 뒤의 대나무 숲에서 나타나 잡아 드렸다. 또한 어머니가 한여름에 꿩 고기를 드시고 싶다고 해서 꿩을 사냥하려는 즈음에 꿩이...

  • 조인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조인수(曺麟壽)는 천성이 착하고 어버이를 공경할 줄 알았으며, 열다섯 살에 아버지가 일찍 죽자 어머니를 43년 동안 섬기며 끝까지 효행을 다했다. 『영암읍지』에 “편모를 섬김에 있어 하루같이 하니 고을 사람들이 감탄을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항상 행동과 몸가짐을 바르게 하니 인근 주민뿐만 아니라 선비나...

  • 열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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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열녀와 열부. 조선 시대는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국가는 이들 덕목의 실천자들인 충신·효자·열녀들에게 관작을 제수하거나 정려(旌閭)로서 칭송토록 배려하였다. 영암 지역에는 많은 열녀와 열부들이 기록과 정려를 통하여 전하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충·효·열의 기념비적 유적들이 남아 있은데, 정려 외에도 효열비나 비각...

  • 서경택 처 김해 김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열녀. 본관은 김해(金海). 양무공(襄武公) 김완(金完)의 딸이며 서경택(徐景宅)의 처이다. 서경택 처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열아홉 살에 시집을 갔으나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에 남편이 천연두에 걸렸다. 병석에 누워 있는 남편의 병을 치료하고자 항상 옆에서 정성을 다하였으나, 결국 남편은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남편을 따라 죽기를 각오하...

  • 안세웅 처 이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열녀. 본관은 완산(完山). 현감을 지낸 이감(李瑊)의 딸이며 안세웅(安世雄)의 처이다. 안세웅 처 이씨는 시집간 지 6개월 만에 남편이 알 수 없는 병을 얻자 정성을 다하여 간병하였으며, 남편을 대신하여 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밤낮으로 하늘에 빌었다. 그럼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죽게 되자, 슬픔을 못 이겨 가슴을 치며 울다가 스스로 목을 매 자결하...

  • 오석전 처 이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열녀. 남편은 오석전(吳錫銓)이다. 이씨(李氏)는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남편 오석전이 모진 병을 얻자 정성을 다해 간병하였으나 결국 남편이 죽었다. 이씨는 슬픔을 못 이겨 자결을 하려 했으나 늙은 노비가 지키고 있어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어느 날 집을 나서는 이씨를 수상히 여긴 동생이 뒤를 밟아 막 물속에 뛰어들려는 이씨를 발견하고 급히 손으로 잡아당기...

  • 윤유성 처 김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열녀. 본관은 영광(靈光). 의병장 김여중(金汝重)의 딸이며 윤유성(尹惟誠)의 처이다. 윤유성 처 김씨는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의 병환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다가 결국 남편이 22세의 나이로 죽자 따라 죽었다....

  • 임자근노미 처 유소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열녀. 남편은 임자근노미(林者斤老味)이다. 임자근노미 처 유소사(劉召史)는 남편이 죽자 친히 시체를 씻겨 옷을 입힌 뒤 낫으로 자결하였다. 『영암읍지』에서는 남편이 죽으니 친히 스스로 염습을 하고 낫을 가져다가 자살하여 죽으니 영조 계미년에 이 사실을 듣고 정려를 내렸다고 한다. 1763년(영조 39)에 나라에서 임자근노미 처 유소사를 정려(旌閭)하였다....

  • 정만 처 최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후기 영암 출신의 열녀. 정만(鄭滿)의 처 최씨(崔氏)[?~1379]는 1379년(고려 신우 5)에 왜구들이 진주에 침입하였을 때 위협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여 왜구로부터 절개를 지킨 열부이다. 도염서승(都染署丞) 최인우(崔仁祐)의 딸이며 진주 호장(晉州戶長)을 지낸 정만의 처이다. 자녀 4남매를 두었다. 정만 처 최씨는 영암에서 남편이 있는 진주로 시집을 갔다. 137...

  • 조도명 처 허소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열녀. 남편은 조도명(趙道明)이다. 허소사(許召史)는 19세에 조도명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해에 남편이 죽었다. 성복(成服) 전에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제사상 밑에 엎드려 7일 동안 금식하여 조용히 죽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허소사는 일찍이 남편이 죽었지만 밤낮으로 빈소를 지켰으며 제사도 소홀함 없이 정성껏 치렀다고 한다....

  • 조안정 처 김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후기 영암 출신의 열녀. 조안정(趙安鼎) 처 김씨(金氏)는 고려 말 왜구들의 침입으로 인해 아버지와 남편이 일찍 죽고, 어머니까지 돌아가시자 청상과부가 되었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가족들의 삼년상을 모두 시묘하였으며 생업을 일삼지 않았다. 사위로는 최덕지(崔德之)가 있다. 조안정 처 김씨는 17세에 아버지가 죽고, 이듬해 18세 되던 해에는 이른 나이에 중랑장의 중책...

  • 최상두 처 이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열녀. 남편은 최상두(崔尙斗)이다. 최상두 처 이씨(李氏)는 남편이 죽자 남편의 관 옆에서 끊임없이 울다가 조용히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남편이 죽자 관 옆에서 곡을 하였는데 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장례 시간이 되자 광중(壙中)[시체가 놓이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에 들어가고자 힘을 써서 시아버지가 겨우 끌어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