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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암문화대전 > 영암향토문화백과 > 삶의 자취(문화 유산) > 기록 유산 > 고문헌·고문서

  • 고문헌·고문서

  • 「금궤 철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에 발급된 김완 장군의 공신녹권. 1625년(인조 3)에 인조(仁祖)가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김완(金完)에게 하사한 패(牌)이다. 김완은 1577년(선조 10)에 이성 현감(利城縣監) 김극조(金克祧)의 아들로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에서 태어났다. 1597년(선조 30) 무과에 급제하여 정유재란 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에 책록(冊錄)되었다. 이후 어모장군, 남원도호부...

  • 『망호정 동계 문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에서 기록한 동계 문서. 임진왜란 직후인 1605년(선조 38) 경주 이씨(慶州李氏)들의 동족 마을인 영암읍 망호리의 망호정을 중심으로 내·외손 간의 돈목과 상호 부조를 목적으로 하는 동각계(洞閣契)가 창설되었다. 1643년(인조 21)에 이진황(李鎭璜)이 중수하면서 규모를 일신하였다고 한다. 망호정의 경주 이씨는 동각과 동계를 중심으로 동족적 기반을...

  • 『영보정 동계 문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영암 영보리에서 기록한 동계 문서.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는 영보정 동계(洞契)가 있다. 『영보정 동계 문서(永保亭 洞契文書)』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의 내·외손을 중심으로 이미 결속되어 있던 구(舊) 계(契)를 중수하는 형태로 작성되었다. 기존의 조약들이 시의에 맞지 않거나 너무 번잡하고 소홀한 면이 있어서 다시 중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계를 세운...

  •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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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영암 구림리의 구림 대동계 관련 문서.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는 구림 대동계 청사(廳舍)인 강수당(講修堂)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98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림 대동계(鳩林大同契)는 1565년(명종 20)에서 1580년(선조 13) 사이에 박규정(朴奎精)·임호(林浩)·이광필(李光弼)·박성정(朴星精)·유발(柳潑)·박대기(朴大器)·임완(林浣) 등이...

  • 『영암군 갑진 조 수조 성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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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개항기 전라도 영암군에서 1904년의 수조 결수를 정리한 토지 대장. 1905년(광무 9) 영암 군수 조동완(趙東完)이 작성한 토지 대장으로, 영암군에서 실제 세를 거둘 수 있는 지난해 전답(田畓)의 결수를 정리하기 위해 만든 책이다. 필사본 1책 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18㎝, 세로 28.2㎝이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내용을...

  • 『영암군 노아도 행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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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영암군 노아도의 희빈방 면세 전답을 작성한 토지 대장. 노아도는 현재 행정 구역으로는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해 있는 섬이며, 희빈은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를 가리킨다. 희빈 장씨는 1686년(숙종 12)에 숙원(淑媛), 1688년에 소의(昭儀)에 책봉되어 왕자 균을 낳았으며, 1689년(숙종 15) 희빈에 봉해진 이후 궁방으로서 ‘희빈방(禧嬪房)’이 생겨나 전답 등의 재...

  • 『영암군 소지 등서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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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영암군의 아전과 백성들이 군수에게 올린 민장과 그 처리 내용이 수록된 책. 1839년(헌종 7)에 영암군의 백성과 아전들이 군수에게 올린 민장과 이에 대한 판결문을 베껴 작성한 책이다. 민장은 백성의 송사(訟事), 청원에 관한 서류를 말한다. 필사본 2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29.8㎝, 세로32.7㎝이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 『영암군 역둔도세 각양세 폐지 공해 조사 성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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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에 내장원과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영암군의 역둔도세 및 각양세, 폐지 공해를 조사하여 기록한 책. 1900년(고종 4)에 내장원과 영암군에서 작성한 양안(量案)으로, 영암군의 역둔도세(驛屯賭稅) 및 각양세(各樣稅)의 내역과 공해(公廨)[폐지된 관가의 건물]를 조사하여 만든 책이다. 필사본 1책 2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18㎝, 세로 29.5㎝이다. 서울 대학...

  • 『영암지 도갑사 사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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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에 있는 도갑사의 사적기. 간행자는 알 수 없으나 간행 연대는 발문(跋文)의 ‘숭정 병자 이십팔 년 계묘(崇禎丙子二十八年癸卯)’라는 기록을 통해 1663년(현종 4)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영암지 도갑사 사적(靈巖地道岬寺事蹟)』은 1책 10장으로 이루어졌으며, 크기는 가로 23.8㎝, 세로 37.6㎝이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 『장암정 동계 문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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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영암 장암리에서 기록한 동계 문서. 장암정 동계는 남평 문씨들이 영보로부터 장암정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던 시기인 1667년(현종 8)에 창설되었다. 장암정 동계를 주도한 성씨는 남평 문씨와 거창 신씨였는데, 남평 문씨들의 동족적인 배경과 일정한 관련을 가지면서 발전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남평 문씨들이 주축이 되어 1667년에 건립한 구암사 창건 직후 동계...

  • 『전라도 영광 지방 염소면 임병도 전양 치패 영암 전세 제이선 증미 절가 급 열미증 구별 성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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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치패된 조운선에서 건져낸 영암 지방의 세곡을 기록한 책. 조선 시대 『대전통편(大典通編)』 호조(戶曹) 조전(漕轉) 조에는 조운선(漕運船) 치패(致敗)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조운선이 치패되었을 때는 지방관이 직접 이를 조사하여 물에 잠긴 세곡을 물 밖으로 꺼내고, 치패한 곳이 지방 관아에서 하루 정도의 거리이면 지방관이 홀로 개색(改色)[조선 시대에 물에 잠긴 쌀...

  • 『전라도 영암군 궁속 진지 전답 타량 후 진기 구별 총수 성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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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전라도 영암군의 용동궁 소속 묵은 땅을 측량해서 기록한 책. 1783년(정조 7) 9월에 영암 군수가 작성한 토지 대장으로, 전라도 영암군 궁속(宮屬)의 묵은 땅을 측량한 후 경작 여부를 구별하여 작성한 책이다. 필사본 1책 40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23.8㎝, 세로 36.8㎝이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조선 시대 영암군의...

  • 『전라도 영암군 김 귀인방 절수 완도 북상벌리 돌개 황복 관지 등 삼처 양 불부 전답 타량 성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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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전라도 영암군 완도 김 귀인방의 미측량 전답을 측량하여 기록한 책. 1688년(숙종 14) 6월에 영암 군수가 작성한 토지 대장으로, 전라도 영암군 완도 김 귀인방(金貴人房)에 내려진 전답 중 측량되지 않은 전답을 측량하여 영암군에서 작성한 양안(量案)이다. 필사본 1책 11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26.4㎝, 세로 44.1㎝이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 『전라도 영암군 사신 획속 노아도 전답 진기 양안 등출초 성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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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영암 군수가 영암군 노아도의 진기 양안을 필사한 책. 1776년(정조 1) 영암군에서 내수사(內需司)로 획속된 영암군 노아도(露兒島)의 진기 양안(陳起量案)을 필사한 책이다. 진기 양안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과 지을 수 없는 땅을 측량하여 작성한 토지 대장이다. 현재 노아도는 완도군에 소속되어 있다. 필사본 1책 227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37.5㎝,...

  • 『전라도 영암군 소재 사신 획속 노아도 전답량 외 금사 득 가경 성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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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6년 영암 군수가 영암군 노아도의 양외 가경 전답을 조사하여 기록한 책. 1776년(정조 1) 8월에 내수사로 획속된 영암군 노아도 소재 양외 가경 전답(量外加耕田畓)을 조사하여 영암군에서 작성한 양안(量案)이다. 양외 가경 전답은 원결(元結)에 포함되지 않은 전답을 말하며, 노아도는 현재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해 있다. 필사본 1책 37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2...

  • 『전라도 영암군 송지면 장도 복재 유 숙의방 축통 언답 급 양 무주 여 가경 전답 타량 성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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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영암 군수가 전라도 영암군 송지면 장도에 있는 전답 등을 측량하여 기록한 책. 1701년(숙종 27) 4월에 전라도 영암군 송지면 장도 내 유숙의방(劉淑儀房)의 언답(堰畓), 임자 없는 전답(無主田畓) 등을 영암군과 내수사에서 함께 측량하여 작성한 양안이다. 필사본 1책 14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38㎝, 세로 56.4㎝이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

  • 『전라도 영암군 표환인 연세 거주 역 성명 성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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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전라도 영암군에 표착한 사람들을 기록한 책. 영암군에 표착[떠돌아다니다가 일정한 곳에 정착]한 자들의 명부로, 1878년(고종 15) 전라 감영의 전라도 관찰사가 작성한 대장이다. 필사본 1책 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20.4㎝, 세로 31.6㎝이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전라도 영암군 표환인 연세 거주 역 성명 성책(全羅...

  • 『전라도 옥구 지방 가도 치패 영암군 대동 제오선 증미 발매 급 열미 구별 성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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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치패된 조운선에서 건져 낸 영암 지방의 전세 처리 내용을 기록하여 호조에 보고한 책. 1871년(고종 8)에 전라 감영에서 작성한 대장으로, 영암 지방의 전세(田稅)를 싣고 가다 옥구 지방의 가도(駕島) 인근에서 치패(致敗)된 조운선(漕運船)에서 건져 낸 증미(拯米), 열미(劣米) 등을 발매(發賣)하여 납부한 내용을 호조에 보고하기 위해 간행하였다. 필사본 1책 6장으로...

  • 『전라도 제주목 표도 유구국인 육명 영암지일 공별궤물종 성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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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전라도 제주목에 표류한 유구인에게 지급된 물건의 종류를 기록한 책. 조선에 외국인들이 표류해 오면 해당 지역에서는 외국 사람들에게 일정한 공간과 식료품을 제공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표류민들이 머무르는 동안 조선 측에서는 세끼 분량의 식량을 지급하였고, 그밖에 반찬거리와 양념들이 제공되기도 하였다. 이는 표류인을 송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1860년(철종 11)에 작성된...

  • 『화수정 동계 문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서 기록한 동계 문서. 『화수정 동계 문서』는 1655년(효종 6) 정만태(鄭萬泰)를 비롯한 영암읍 화수정 마을의 장로(長老) 2~3인에 의해 조직되었던 동약이다. 그 유서가 상세히 전하지는 않지만, 내용상 초기 향약들이 강조하는 4개 조의 덕목을 상·하민에게 주지시켜 임진년과 병자년 양란 이후 급격히 변모되어 가는 향촌의 기강과 질서를 재확립하려는...

  • 구암사 소장 자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구암사의 소장 자료. 구암사(龜岩祠)는 1668년(현종 9) 영암의 향사우(鄕祠宇)로 창건되어 이후백(李後白)과 문익주(文益周)를 제향하다가 서명백(徐命伯)을 추배하여 삼현사(三賢祠)로 불렸다. 이후 1920년대에 문극겸(文克謙), 문맹화(文孟和), 곽추(郭樞)를 추배하였으나 1945년 이후백의 후손들이 위패를 청련사로 옮겨 현재는 모두 5위를...

  • 삼충각 소장 자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삼충각 소장 자료. 삼충각(三忠閣)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박형준(朴亨俊)과 아들인 박효남(朴孝男), 박호남(朴好男) 삼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46년(헌종 12) 지역 유림이 발의, 상소해 나라에서 1860년(철종 11)에 삼부자를 정려하였다. 1901년과 1932년에 개수한 뒤 1946년에 중창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2년에 중수된...

  • 서호사 소장 자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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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서호사의 소장 자료. 서호사(西湖祠)는 원래 태호사(兌湖祠)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다가 1677년(숙종3)에 서호사란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서호사는 구림 대동계에서 조두 제물(俎豆祭物)을 보냈던 사우이며,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을 제향하고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서호사 소장 자료...

  • 송양사 소장 자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송양사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 송양사(松陽祠)는 덕진면 노송리에 있으며 거창 신씨(居昌愼氏) 문중 사우이다. 1796년(정조 20)에 신희남(愼喜男), 신천익(愼天翊), 신해익(愼海翊)을 제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1826년(순조 26) 신기(愼幾)를 주벽으로 하고 신영수(愼榮壽)도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

  • 열무정 및 사포계 문서 일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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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의 열무정에 보관되어 있는 사포계 문서. 열무정(閱武亭)은 일명 사정(射亭)이라 불리는 정자로, 1797년(정조 21) 열무정 구성원들이 사정을 유지하기 위해 사포계(射布契)를 창설하였다. 열무정은 1797년의 사포계 창설을 계기로 계속 지역 사학들의 보호 아래 관리되다가 1880년(고종 17) 당시 군수이던 민창호(閔敞鎬)의 협조로 중수되었다. 열무정...

  • 영암 고반재 및 소장 고문서 일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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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에 있는 조선 시대 재실과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고반재(考槃齋)는 밀양 김씨(密陽金氏)의 재실로서 해명재(海明齋) 또는 강명재(講明齋)라고도 한다. 1628년에 김홍발(金弘發)[1582~1643]이 노동 마을에 정착한 후 155년이 지난 1783년에 김치상(金致商)[1738~1797]이 창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3년에 중수된 건물이다. 고반재는...

  • 영암 녹동 서원 소장 목판 및 고문서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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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있는 녹동 서원과 관련된 목판과 고문서. 녹동 서원(鹿洞書院) 소장 목판 및 고문서류는 녹동 서원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1868년 서원 훼철 이후 목판각(木板閣)과 합경재(合敬齋)로 이관해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녹동 서원은 영압읍 교동리에 위치해 있고, 목판각과 합경재는 덕진면 영보리에 위치하고 있다. 녹동 서원은 1630년(인조 8)에 존양사(存養祠)...

  • 운호사 소장 자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에 있는 운호사 소장 자료. 운호사(雲湖祠)는 서호면 몽해리에 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문중 사우이다. 1817년(순조 17)에 김극희(金克禧), 김함(金涵), 김완(金完), 김여준(金汝俊), 김여옥(金汝沃)을 제향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61년에 복원되었다. 운호사 소장 자료는 운호사...

  • 장동사 소장 자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장동사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 장동사(長洞祠)는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천안 전씨(天安全氏) 문중 사우이며, 1677년(숙종 3) 임진왜란 때 순절한 전몽성(全夢星)을 추모하기 위해 서호면 장천리 장동 마을에 건립한 사우이다. 1706년(숙종 32)에 중수하였으며 1776년(영조 52)에 전몽진(全夢辰), 1836년(헌종 2)에 전몽태(全夢台)를...

  • 죽정 서원 소장 자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죽정 서원 소장 자료. 죽정 서원(竹亭書院)은 1681년(숙종 7) 함양 박씨(咸陽朴氏) 영암 입향조인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18~148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역 유림의 발의로 건립되었다. 1683년에 박권(朴權)과 박규정(朴奎精), 1726년에 이만성(李晩成), 1835년에 박승원(朴承源)을 추배하여 5위를 제향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