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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968
한자 烈女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은정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열녀와 열부.

[개설]

조선 시대는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국가는 이들 덕목의 실천자들인 충신·효자·열녀들에게 관작을 제수하거나 정려(旌閭)로서 칭송토록 배려하였다.

영암 지역에는 많은 열녀와 열부들이 기록과 정려를 통하여 전하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충·효·열의 기념비적 유적들이 남아 있은데, 정려 외에도 효열비나 비각, 각 문중의 쌍효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유적들 중 열녀로서 국가로부터 명정(命旌)을 받은 경우는 두 곳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모두 마을에서 추천하여 건립된 것이다.

[열녀 기록]

영암 지역 열녀에 대한 국가의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열녀 조에 고려 시대 정만(鄭滿)의 처 열녀 최씨와 조안정(趙安鼎)의 처 열부 김씨가 실려있다. 또, 『여지도서(輿地圖書)』 열녀 조에 최상두(崔尙斗)의 처 열부 이씨, 안세웅(安世雄)의 처 열부 이씨, 임자근노미(林者斤老味)의 처 열부 유소사(烈婦劉召史), 오석지(吳錫之)의 처 열부 이씨 등이 전한다. 그러나 이들과 관련된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열녀와 열녀 유적]

영암 지역에 남아 있는 열녀 관련 유적은 열녀문, 열녀각, 효열문, 효열비, 정려, 절효문(節孝門) 등인데, 대표적인 유적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정몽열 처 함풍 이씨 정려각(丁夢說 妻 咸豊 李氏 旌閭閣)

함풍 이씨정몽열의 처로, 시부모를 극진히 섬겼다. 또한 괴질에 걸린 남편을 4년간 간호하였으나 끝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르고 자결하여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런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1756년(영조 32)에 명정(命旌)을 받았다. 정몽열 처 함풍 이씨 정려각영암군 금강리 당산 마을에 있다.

2. 문규원 처 함양 박씨 정려문(文奎源 妻 咸陽 朴氏 旌閭門)

함양 박씨오한 박성건의 후손으로, 문규원과 혼인하한 뒤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였다. 1854년 남편이 갑자기 죽자 삼년상을 치르고 자결하였다. 1871년에 순찰사(巡察使) 서상정(徐相鼎)이 조정에 보고하여 명정을 받았다. 문규원 처 함양 박씨 정려문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494번지에 있다.

3. 정석열 처 함양 박씨 열녀비(鄭錫烈 妻 咸陽 朴氏 烈女碑)

함양 박씨는 박동눌(朴東訥)의 딸로 1800년에 태어났다. 정홍제의 손자인 정석열과 혼인하였으나 남편이 36세에 요절하였다. 박씨 부인은 생전에 시부모를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는데, 문중과 향촌에 열녀로 천거되어 1835년 비석이 건립되었다. 비석은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새실 마을 북쪽에 있는 하동 정씨의 효자문 옆에 세워져 있다.

4. 박태인(朴泰寅)의 처 전주 최씨(全州崔氏)

전주 최씨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의 13세손인 최상배(崔相培)의 딸로 태어나 18세에 박태인에게 출가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혼자되어 죽을 때까지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여 1931년에 열행을 추모하는 비석이 세워졌다.

5. 전주 이씨 효열각(全州 李氏 孝烈閣)

전주 이씨 집안으로 시집 온 현풍 곽씨(玄風郭氏)김해 김씨(金海金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비각(碑閣)을 세웠다. 현풍 곽씨는 이한경(李漢鯨)의 부인이고, 김해 김씨는 이승신(李承新)의 부인이다. 비각은 영암군 덕진면 백계리 275에 있다.

[기타 유적]

위에서 열거한 유적 외에도 덕진면 상계리 동백정에 열부 현풍 곽씨 비각·효부 김해 김씨비, 덕진면 운암리에 열부 최씨 부인비, 금정면 용흥리에 효부 완산 이씨비, 신북면 양계리 백운동에 곽씨 효열문, 도포면 성산리에 해주 최씨 효열문·장택 고씨 절효문·남원 윤씨 의행비·함양 박씨 효열비, 군서면 월곡리에 함양 박씨 효열비, 학산면 상월리에 해주 최씨 열녀문, 미암면 두암리에 효부 창녕 조씨 기적비 등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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