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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981
한자 陸萬泰
이칭/별칭 래숙(來叔),은산(隱山)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성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육만태의 효행을 기려 육효자비 건립
효자비 육효자비 -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옥천

[정의]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개설]

육만태(陸萬泰)는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치질병과 담병(痰病)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고, 산에 올라가 노루를 잡아 아버지의 병을 구완하는 효행을 보였다.

[가계]

본관은 옥천(沃天), 자는 래숙(來叔), 호는 은산(隱山)이다. 옥천 육씨 덕곡공파(德谷公派) 육보의 후손이며, 육세록의 손자이다.

[활동 사항]

육만태는 효성이 지극하여 추운 겨울에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급할 때 의원이 물천어[흐르는 물에 사는 민물고기]가 좋다고 하자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 병을 구완하였다. 또, 아버지가 담병으로 고생할 때는 의원이 노루가 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자, 산으로 들어가 온종일 노루를 잡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노루를 잡지 못하자 육만태는 하늘을 보고 슬피 울었는데, 갑자기 노루가 나타나서 이 노루를 잡아 아버지를 구완하였다. 이후에도 육만태는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할 때마다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어 드려 연명케 하였으며, 돌아가신 후에는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상훈과 추모]

육만태의 효행을 기려 1968년에 유림의 선비들이 협력하여 육효자비(陸孝子碑)를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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