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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산성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615
한자 城妙山城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오산 마을
집필자 고용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성묘산성 터,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시행
소재지 성묘산성 터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오산 마을 성묘산지도보기
성격 산성 터
지정 면적 약 382m[둘레]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성묘산에 있는 산성 터.

[개설]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따르면, 옛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던 군서면(郡西面)에는 성묘산(城妙山) 정상부에 위치한 성묘산성(城妙山城)월출산 구순봉의 가지 능선에 위치한 도갑산성(道岬山城) 등 2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성묘산성이 입지하고 있는 군서면영암읍덕진면 지역과 함께 삼국 시대 때부터 군현(郡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이다. 백제 때 월내군(月奈郡)[월나군]이었으며, 통일 신라 때인 757년에 영암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 성종(成宗)[960~997] 때 일시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018년(고려 현종 9)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되는 영암군으로 환원되었다. 조선 후기 서시면(西始面)과 서종면(西終面)으로 개편된 후, 1914년 두 개의 면이 군서면으로 통합되어 2013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변천]

성묘산성 내부에서는 유물이 전혀 수습되지 않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나 사용 시기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군서면 일대에 왕인 박사 유적상대포 등의 고대 유적의 분포를 고려하고, 영암군의 중심 권역을 이루고 있었던 점과 해발 100m 정도의 낮은 산 정상부에 입지하고 있으며, 영암천을 비롯한 영산강 일대가 잘 조망되는 요충지에 들어서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백제 때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위치]

성묘산성 터전라남도 군서면 마산리 오산 마을영암읍 송평리 경계인 성묘산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성묘산성 터는 1986년에 목포 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 때 확인되었고, 1999년에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작성할 때 다시 확인되었다. 성묘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산성 내부에서도 유물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 및 배경은 알 수 없다.

[현황]

성묘산성오산 마을 북쪽에 형성된 해발 100m의 성묘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타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테뫼식[봉우리를 둘러쌓아 성을 축조하는 방법] 산성이다.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에 따르면 “약 212칸[間]의 석루(石壘)로 대부분이 붕괴되었다.”라고 성묘산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를 근거로 복원한 성벽의 둘레는 약 382m로서, 소규모의 석축(石築) 산성임을 알 수 있다. 성묘산성영암천을 비롯하여 영산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방이 잘 조망되는 요충지를 이루고 있다.

성묘산성의 성벽은 대부분 무너진 상태지만, 북벽 부분만 2단 정도가 남아 있어 축조 기법을 살펴볼 수 있다. 성벽은 할석재(割石材)를 이용하여 내벽과 외벽 모두 돌로 쌓는 방식인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조하였다. 나머지 동벽·서벽·남벽 등 약 300m 가량의 성벽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이다. 한편 성묘산성에서는 조선 후기 봉수를 올리고, 기우제를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묘산성 정상부에는 상부 직경 6m, 하부 직경 15m, 구덩이[坑坎] 직경 2m의 봉수를 올렸던 연조(煙竈)의 유구가 남아 있다. 유물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성묘산성영산강과 그 지류인 영암천을 오가는 해상 교통로를 감시·통제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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