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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073
한자 靈巖川
이칭/별칭 덕진천(德津川)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해당 지역 소재지 영암천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시종면|서호면지도보기
성격 하천
면적 228.88㎢
길이 24.40㎞[유로 연장]|24.12㎞[하천 연장]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서 발원하여 시종면을 거쳐 서호면에서 영산강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명칭 유래]

영암천(靈巖川)은 군명인 영암(靈岩)에서 비롯되었으며, 옛날에는 덕진천(德津川)이라 하였다. 『여지고(輿地考)』[영암]에 “덕진포(德津浦)는 북쪽 5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 군현 지도 중 「영암군 지도」덕진교(德津橋)가 보이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덕진포가 표기되어 있다.

영암은 월출산(月出山)에 있는 바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이곳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인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영암은 백제 때 월나군(月奈郡)이었으며, 신라에 이르러 처음으로 영암군이라 불렸고, 997년(성종 16)에 낭주(朗州)로 개칭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영암으로 불리게 되었다.

[자연 환경]

영암천영암군 영암읍 학송리 풀고개[草峙] 북쪽에서 발원하여 학송 저수지에 유입한 뒤 북쪽으로 흘러 반송정을 지나 원등들을 거쳐 동쪽 돋받재골 물과 함께 쌍정 저수지를 형성한다. 쌍정 저수지를 감돌아 서쪽으로 흐른 영암천은 방죽 아래 영암읍 개신리 미륵동 마을에서 국도 13호선을 지나 용계들로 나가 사자 저수지 물을 합해 북서쪽으로 흐른다.

영암천영암읍 동무리·역리·서남리 동쪽 큰들을 지나면서 동쪽 선황 저수지·율산 저수지·농덕 저수지 물을 받으며, 영암읍 대신리 대내 마을 남쪽에 이르러 동쪽 장암 저수지·신석 저수지 물과 합류한다. 덕진 다리가 있는 교번에서는 동쪽 덕진면 노송리 마산 저수지노송 저수지 물과 북동쪽 영보역(永保驛)촌이었던 영보리 냉천 저수지·대천 저수지, 북쪽 백계 저수지·운암 저수지 물을 모아 서쪽으로 흐른다. 연정봉 앞에 이르러서는 북쪽 남성촌 입비 저수지, 장산리 장산 저수지, 용강리 용강 저수지·청림 저수지 물이 덕진면 금강리 당암 마을과 강정 마을 사이를 타고 합류한다.

영암천영암읍 망호리 배날리 서쪽에 이르러는 망호천과 북쪽 금성천, 남쪽 회문천을 합해 해창만으로 나간다. 지금은 간척지로 변해 옛날 갯골이 유로가 되어 북쪽에서 내린 도포천과 합류하고, 옛 영암만으로 나가서는 남동쪽에서 온 호동천학산천을 합해 서호면 금강리 지내머리와 시종면 신학리 창진개 서편에 이르러 영산강[영산호]으로 유입한다. 옛 영암의 외항(外港)이던 군서면 해창포에서 금강리 성재포까지 새로 생긴 유로는 7.3㎞쯤 된다.

[현황]

영암천영암읍 월출산[811m] 동녘 학송리 쌍정제 방수로부터 시종면 학산리를 거쳐 서호면 금강리 영산강 합류점까지 흐르며, 유로 연장은 24.4㎞이, 하천 연장은 24.12㎞이며, 유역 면적은 228.88㎢이다. 영산강 수계 제1 지류이다. 영암읍을 감도는 영암천 유역의 들은 해발 고도가 10m 미만으로 질펀하다.

영암이 월출산의 북녘인데도 읍터로 꾸며진 것은 역리의 범바웃등[58m]으로 내려선 좌청룡이 안산(案山) 역할까지 함께 하고, 덕진만이 열려 있어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고려 때 덕진만에는 국가에 세곡을 모아 바치는 조운창(漕運倉)이 해창교 사이 갯가의 둔덕에 설치되기도 하였다. 월출산과 주변 산등성에서 흘러 내려온 토사로 점차 덕진만이 매립되어 수심이 얕아지자 덕진에 다리가 놓였다. 덕진면 내촌 마을 영암천 가에는 ‘대석교 창주 덕진지비(大石橋創主德津之碑)’라 새겨진 높이 150㎝, 너비 62㎝ 크기의 빗돌이 비각 속에 있다. 이 돌 비는 덕진(德津) 여사(女士)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813년에 건립된 것이다.

덕진이란 원래 큰 나루라는 의미를 가진 지명이다. 1830년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지은 농업 경제에 관한 박물학서]에 3·8일장이 섰다고 기록되어 있다. 덕진장 날은 천변 백사장에 해수찜 객까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삼각산[연정봉 17m] 동편 윗골에도 여왕등이라는 모래무지가 있어 단옷날에는 모래찜 객으로 가득했고, ‘갯마터’는 고깃배들이 접안한 선창도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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