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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이 고향 집을 돌아보던 돌정 고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776
한자 王仁-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18
집필자 정성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4년 - 「왕인이 고향 집을 돌아보던 돌정 고개」,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왕인과 성기동」으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5년 - 「왕인이 고향 집을 돌아보던 돌정 고개」, 한국 교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백제 왕인 박사 사적 연구』에 수록
관련 지명 왕인 박사 유적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18지도보기
관련 지명 상대포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925-22지도보기
성격 전설|유래담|인물담
주요 등장 인물 왕인|아신왕|태자 전지|응신 천황
모티프 유형 위인의 학문 성취|왕명으로 길을 떠남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 전해 오는 백제의 왕인 박사와 관련된 유적 이야기.

[개설]

「왕인이 고향 집을 돌아보던 돌정 고개」왕인이 왜(倭)로 떠날 때 고향을 돌아보던 장소와 배를 타던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간한 『영암의 전설집』과 1995년 한국 교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백제 왕인 박사 사적 연구』에 수록된 내용을 보완하였다.

[내용]

수려하고 아름다운 월출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백제의 학자 왕인(王仁)[?~?]은 일본 아스카[飛鳥] 문화와 나라[奈良] 문화의 성립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왕인은 백제의 제17대인 왕인 아신왕(阿莘王)[재위 392~405]의 명으로 왜(倭)의 응신 천왕(應神天皇)의 초청을 받아 건너갔다.

왕명을 받들어 왜로 떠나야 했던 왕인은 정든 고향인 성기동[성지골]을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한참 길을 걷다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개에 이르자 왕인은 정든 고향과 작별해야 한다는 마음에 자신이 태어난 성기동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후세 사람들은 왕인의 애틋한 마음을 기려 그 고개를 돌정 고개라 불렀다. 원래 돌정 고개에는 돌이 거의 없고 61cm[2척] 가량의 표층토만 제거하면 밑으로 많은 숯과 토기 조각, 도자기 조각, 기와 조각이 쌓여 있어 도요지(陶窯址)의 흔적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구림 공립 중·고등학교와 서구림리서호정 마을을 연결하는 길이 뚫려 있다.

왕인이 왜로 떠날 당시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옛 포구인 상대포(上台浦)[배첩골]에서 배를 탔다고도 전해 오고 있다. 당시 왕인의 나이는 32세였다. 상대포는 구림(鳩林)에서 3.5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간척 공사로 육지가 되었지만 옛날에는 중요한 포구였다. 최근 이 지역에 상대포 역사 문화 공원이 조성되었다.

[모티프 분석]

「왕인이 고향 집을 돌아보던 돌정 고개」는 ‘위인의 학문 성취’와 ‘왕명으로 길을 떠남’을 주요 모티프로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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