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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459
한자 上臺浦
분야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상대 마을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949년 - 상대포 학파 농장 간척으로 소멸
비정 지역 상대포 - N34° 41′ 31.4″, E126° 37′ 29.9″지도보기
성격 포구
관련 문헌 『택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었던 포구.

[개설]

상대포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상대 마을 서쪽에 있었다. 현재 인근에 영암 도기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상대포에는 누각과 작은 연못이 복원되어 있다. 상대포는 인근 들판의 해발 고도가 2m 내외로, 밀물이 되면 깊이 2m 정도의 바다가 되어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가항 수로의 끝단에 해당된다.

설화에 의하면 상대포에서 왕인이 일본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전거가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상대포 운영 시기는 상대포 인근에 있는 구림 도기 가마 터, 정원명 석비, 도선 관련 기록이나 설화 등으로 보아 통일 신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칭 유래]

상대포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상대 마을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상대포라는 지명은 기록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의 국제 포구였던 상대포는 고려나 조선에 들어와서는 포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통일 신라 당시 상대포는 인근 남동쪽 구릉에 구림 도기 가마터가 있어 산업 단지의 포구라 할 수 있다.

1987년 12월, 2기의 가마터가 이화 여자 대학교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발굴 결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도기에 유약을 발라 만든 시유 도기를 만든 가마터로 밝혀졌다. 구림에서 생산된 도기들이 장보고 유적인 완도 청해진 장도 유적에서 발굴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이를 감안하면 구림 도기 가마는 통일 신라 시대인 7~9세기 무렵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편 통일 신라 때 상대포 인근에서는 관 주도였던 월출산 제사와는 별도로 민간에서도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도 있었다. 구림 마을에서는 매향 신앙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정원 2년명(貞元二年銘)[786년] 석비가 그것이다. 이 석비는 지금까지 발견된 매향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구림 도기 가마 터의 운영 시기와 겹치고 있고 상대포와 관련된다. 매향 신앙은 향나무를 보통 육수(陸水)와 해수(海水)가 만나는 갯벌에 매장하여 불력(佛力)의 보호를 이끌어내는 민간의 미륵 하생 신앙으로, 해양 문화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매향 사실을 기념하고 매향한 지점을 잊지 않기 위해서 바위 또는 비에 새기는데 이를 매향 바위 또는 매향비라 하며, 영암 정원 명 석비 역시 매향비에 해당한다.

상대포의 운영 시기는 구림 마을 출신 인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먼저 구림 출신 도선[827~898]은 신라의 멸망과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고, 17세의 왕건에게 찾아가 덕과 지략을 가르쳐, 한국식 비보 풍수설의 개창조로 일컬어지고 있다. 역시 구림 출신인 최지몽(崔知夢)[907~987]은 924년 왕건의 서남해안 활동 시 핵심 참모로 왕건을 따라 종군(從軍)한 후 중앙 요직에 진출한 인물이다.

이런 상대포와 관련된 역사와 아울러 고대 상대포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기록을 살펴보자. 고려 명종 때의 시인 김극기(金克己)는 영암의 월출산에 올라 영암 서쪽 서호(西湖) 바다를 “해상(海商) 백 명이 옛날에 바다를 넘어갈 때, 산 위의 신광(神光)을 아득히 바라보았다.”라고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해상 백 명’은 다음 조선 후기에 이중환(李重煥)이 쓴 『택리지(擇里志)』의 다음 기록과 일맥상통한다. “월출산 남쪽은 월남촌이고 서쪽은 구림촌이다. [구림촌은] 신라 때 이름난 마을로서 지역이 서해와 남해가 맞닿는 곳에 위치하여, 신라에서 당나라로 조공 갈 때 모두 이 고을 바닷가에서 배로 떠났다. 바닷길을 하루 가면 흑산도에 이르고, 흑산도에서 또 하루 가면 홍의도(紅衣島)[홍도]에 이른다. 다시 하루를 가면 가가도(可佳島)에 이르며, 간방(艮方) 바람[동북풍]을 만나면 3일이면 중국 태주(台州) 영파부(寧波府) 정해현(定海縣)에 도착하게 되는데, 실제로 순풍을 만나기만 하면 하루 만에 도착할 수도 있다. 또 남송이 고려와 통행할 때 정해현 바닷가에서 배를 출발시켜 7일 만에 고려 경계에 이르고 뭍에 올랐다는 곳이 바로 이 지역[구림촌]이다. 당나라 때 신라 사람이 바다를 건너서 당나라에 들어간 것이 지금 통진(通津) 건널목에 배가 잇닿아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당시에 최치원, 김가기, 최승우는 상선을 편승하고 당나라에 들어가 당나라의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상의 기록으로 보아 구림 마을은 신라 때부터 명촌이었고, 중국에 왕래하는 포구였음을 알 수 있는데, 상대포가 그 포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신라 말 최치원, 김가기, 최승우 등이 당나라에 유학할 때 상선에 편승하여 떠났다는 것으로 보아, 상대포는 사신선과 상선이 발착(發着)하는 통일 신라의 중심 포구였음을 알 수 있다.

상대포는 일제 말기 들어 영암군 학산면 출신 사업가 현준호(玄俊鎬)[1889~1950]가 1939~1949년까지 간척 공사를 하여 학파 농장을 만들면서 바다 물길이 차단되어 포구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상대포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상대 마을군서천과 바다 갯고랑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6.23 [개설],[형성 및 변천] 수정 <변경 전> 현재 인근에 영암 도기 문화 센터가 자리 잡고 있으며, / 도림 도가 가마는 남북국 시대인 7~9세기 무렵에 운영된 것으로 <변경 후> 현재 인근에 영암 도기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 구림 도기 가마는 통일 신라 시대인 7~9세기 무렵에 운영된 것으로
이용자 의견
임** 오탈자 수정바랍니다. 시대편년 정리해 주시고요
  • 답변
  • 디지털영암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6.20
임** 현재 인근에 영암 도기 문화 센터가 자리 잡고 있으며> 영암도기박물관으로

도림 도가 가마는 남북국 시대인 7~9세기 무렵에 운영된>구림도기 가마는 통일신라시대 7-9세기로 수정바랍니다
  • 답변
  • 디지털영암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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