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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677
한자 月出山龍巖寺址
이칭/별칭 용암사지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산26-8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최연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2년 3월 2일연표보기 - 월출산 마애 여래 좌상 국보 제144호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5년 7월연표보기~1995년 10월연표보기 - 목포 대학교 박물관 지표 조사 시작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5년 7월~10월 - 월출산 용암사 터 지표 조사 결과 건물지에서 다량의 기와 조각 수습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6년 1월 4일~4월 3일 -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 석탑 복원 및 사리 장치 출토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8년 8월 8일연표보기 -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 석탑 보물 제1283호로 지정
소재지 월출산 용암사 터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산26-8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문화재청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산26-8
성격 폐사지
관리자 영암군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는 용암사의 폐사지.

[개설]

월출산(月出山) 용암사(龍巖寺) 터는 영암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는 폐사지(廢寺址)로서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 여래 좌상과 삼층 석탑 2기(基), 조선 시대 후반의 부도 2기가 현존하고 있으며, 문헌 기록과 출토된 기와의 명문을 통해 용암사 터임이 확인되었다. 월출산 용암사 터는 ‘용암사지(龍嵒寺址)’로도 불린다.

[변천]

용암사의 창건과 관련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조선 후기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용암사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위치하며, 9층 부도가 있다[龍嵒寺 在月出山 九井峯下 有九層浮屠]’라고 하여 그 이름이 나타나며, 승평(昇平)[순천]의 선암사(仙岩寺), 희양(晞陽)[광양]의 운암사(雲岩寺)와 더불어 호남의 삼암사(三岩寺)로서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지목한 3대 비보 처 중의 하나로 중시되었다고 전한다.

최지몽으로 대표되는 영암 출신 인물들이 고려의 개국과 통치 제제의 정비에 중요 역할을 함에 따라 고려 초 940년(태조 23)에 양무군의 속현이던 탑진현이 영암군에 편입된 이래로 현종 연간에는 현재의 강진 지역이 모두 영암 관내로 이속됨으로써 영암군의 위세가 크게 격상되었다. 또한 용암사지에 현존하는 마애불과 삼층 석탑이 모두 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할 때, 용암사는 고려 시대 초반에 그 사격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절터 입구에 있는 2기의 부도가 조선 시대 후반에 조성된 것을 통해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법등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용암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위치]

용암사 터월출산 구정봉 북서쪽 계곡부에 있으며, 구정봉을 등지고 서쪽으로 노적봉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구정봉에서 월출산 국립공원 등산로를 따라 약 500m 정도 아래에 있는 영암 월출산 마애 여래 좌상에서 다시 약 100m 정도 내려가면 확인할 수 있다. 1657년에 제작된 『동국여지지』에서 용암사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다고 하였으며, 1985년에 현지에서 ‘용암사(龍嵒寺)’라는 평와(平瓦)가 발견됨으로써 문헌과 유물 모두 이곳이 용암사 터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용암사 터 주변에 있는 마애 여래 좌상은 일찍부터 주목받았지만 이곳에 있는 폐탑과 사지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학술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절터 곳곳에 초석이 노출되어 있고 기와 조각이 산재해 있었으며, 동쪽의 암반 위에는 무너진 석탑재가 방치되어 있었다. 이에 영암군은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하여 1995년 7월부터 10월까지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용암사 터는 전형적인 산지 가람의 특성을 보여 주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즉 구정봉으로부터 이어지는 산세를 활용하여 뒤편과 전면에 각각 석축을 쌓았는데, 특히 산등성이의 경사면을 이용해 쌓은 뒤편의 석축은 자연 암반을 활용하고 있어 현재에도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사찰의 규모는 석축 위에 마련한 대지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금당을 짓고 남쪽에는 소형의 요사채를 건립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석탑은 금당으로 추정되는 건물지의 동쪽 암반 위에 건립되어 있어 산지 가람의 특성을 나타내며, 후면 석축의 하단 중앙에서는 깊이 120㎝ 정도의 우물지가 확인되었다. 우물지의 뒷벽은 역시 자연 암반을 활용하였고, 좌우는 판판한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용암사 터 동편 암반 위에 무너져 있던 석탑은 그 부재를 정리하고 결실된 것을 모두 찾아 복원도를 작성할 수 있었는데, 그 결과 고려 시대 초반에 건립된 높이 4.56m의 3층 석탑으로 확인되었다. 아울러 인근에 위치한 ‘영암 월출산 마애 여래 좌상’ 역시 고려 시대 초반에 조영된 것으로 이미 파악된 바 있고, 주변에 다른 사찰이 조영된 흔적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여 그 소속 사원이 용암사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명칭을 ‘월출산 용암사지 마애 여래 좌상’으로 정정할 것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영암 월출산 마애 여래 좌상 부근에서는 기하학 선문, 격자문, 사선문, 어골문 등의 기와 조각과 ‘암사(嵒寺)’, ‘용암(龍嵒)’, ‘미(未)’ 등의 글씨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다량 수습되었으며, 용암사 터 일대에서도 역시 비슷한 문양의 기와 조각과 오목 굽의 백자 저부 조각이 확인되었다.

[현황]

2013년 현재 용암사 터에는 『동국여지지』에서 언급된 9층 부도는 없으며,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종형(石鐘形) 부도 2기가 절터 입구에 있고, 절터에는 주춧돌과 절구, 우물지가 남아 있다. 사역 동편 높직한 암반 위에는 1995년 지표 조사에서 수습된 석탑 부재들을 토대로 1996년에 4.7m 높이로 복원된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 석탑’이 서 있으며, 이는 1998년에 보물 제1283호로 지정되었다. 복원 당시 탑 내부의 감실 바닥에서 백자호에 청자 뚜껑을 덮은 외사리기와 그 안의 금동 보살 좌상과 사리호, 청자 대접 1점, 사리 32과, 쇳조각[철편] 11점 등이 출토되었다.

용암사 터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 국보 제144호 영암 월출산 마애 여래 좌상이 있고, 여기에서 전면으로 약 150m 떨어진 곳에는 높이 1.8m 정도의 길쭉한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삼은 삼층 석탑이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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