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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623
한자 道岬寺守眉王師碑
이칭/별칭 도갑사 묘각 화상비,월출산 도갑사 왕사 묘각 화상비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연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33년 6월연표보기 - 도갑사수미왕사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7년 6월 1일연표보기 - 도갑사수미왕사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도갑사수미왕사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0년 - 도갑사수미왕사비 보호각 건립
현 소재지 도갑사수미왕사비 -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로 306지도보기
성격
관련 인물 수미 왕사
크기(높이,너비,두께) 3.34m[전체 높이]|2m[비신 높이]|1.08m[폭]|0.21m[두께]
소유자 도갑사
관리자 도갑사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에 세워진 수미 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기록한 비.

[개설]

도갑사수미왕사비(道岬寺守眉王師碑)는 1633년에 영암군의 도갑사에 세워진 비석으로 조선 세조 대 왕사(王師)를 지낸 묘각 화상(妙覺和尙) 수미(守眉)의 행적과 도갑사 중창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세조 대 흥불 정책의 상징적 인물인 수미와 왕실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도갑사수미왕사비는 ‘도갑사 묘각 화상비’와 ‘월출산 도갑사 왕사 묘각 화상비’로도 불린다. 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비문의 내용에 따르면 수미가 입적한 후 도갑사의 동쪽 산기슭에 승탑과 더불어 행덕을 기록한 비를 세웠으나 글자가 마멸되어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당시의 주지였던 청신 화상(淸信和尙)이 백암(栢庵) 성총(性聰)[1631~1700]에게 비문을 부탁하였다고 하였다. 비의 건립은 1629년(인조 7) 2월에 시작하여 4년 후인 1633년(인조 11) 6월에 완성되었다.

[위치]

도갑사수미왕사비영암군 군서면에 위치한 도갑사 경내에 있다. 대웅보전 뒤로 우측에 국사전(國師殿)이 있으며, 그 오른편에 보호각을 건립하여 보존하고 있다.

[형태]

도갑사수미왕사비는 가로 160㎝, 세로 175㎝ 크기의 방형 대좌와 귀부(龜趺)[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귀부의 등 가운데에 장방형의 비좌를 설치하고 이수(螭首)[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를 갖춘 비신를 올렸다. 귀부의 머리는 용의 머리처럼 되어 있으나 목이 짧고 도식화된 형식이다. 눈방울이 부리부리하여 용맹스러운 인상을 주며 여의주를 물고 있는 이빨이 두드러진다. 귀갑(龜甲)은 벌집 모양의 육각문으로 몹시 두껍게 조각되어 있으며, 앞발은 약간 벌려서 ‘八’자 형으로 뻗어 나왔고 발톱은 앞발과 뒷발 모두 5조(爪)이지만 역시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비신에는 별다른 문양이 없으며, 전면 상단에 13.5㎝ 크기의 글씨로 ‘월출산 도갑사 묘각 화상 비명(月出山道岬寺王師妙覺和尙碑銘)’이라는 전액(篆額)이 있다. 본문은 모두 19행이고 해서체로 새겼다. 비신 위에 놓여 있는 이수는 조선 시대의 일반적인 형태인 팔작지붕형이 아닌 방형으로 밑면에 3단의 고임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는 구름무늬가 섬세하게 양각되어 생동감을 준다. 네 모서리에 날아오르는 듯한 용머리를 조각하였으며, 전면 중앙에는 한 쌍의 용이 싸우듯이 서로 뒤얽혀 혀를 맞대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여 박진감을 느끼게 한다.

[내용]

비신의 전면에는 수미 왕사의 업적을 기록하였는데, 출생과 출가, 교학 연구에서 선 수행으로의 전환한 배경과 수학 내력, 속리산 법주사에서 도반 신미(信眉)와의 만남, 조선 전기 억불 정책이 시행되던 상황에서 판선 종사(判禪宗事)를 역임하면서 종문을 지켜낸 업적과 비의 건립 과정 등을 간략히 서술하였다. 특히 본사인 도갑사에 돌아와 머무는 동안 세조수미의 문도인 홍월(洪月)에게 중창 공사를 주관하게 한 것을 계기로 황폐하던 도갑사가 크게 중창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비의 전액과 본문 모두 백암 성총이 짓고 썼다. 후면은 시주질(施主秩)로서 비의 건립에 참여하였던 지역 인사 및 승려들의 이름을 나열하였다.

[현황]

2000년에 보호각이 건립되었다.

[의의와 평가]

수미 왕사는 1458년(세조 4)에 왕명으로 해인사 대장경 50부를 인출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세조의 『월인석보(月印釋譜)』 간행 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세조 대 불교 중흥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도갑사수미왕사비는 이 같은 수미의 행적을 전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볼 때 17세기 초에 세운 석비이면서도 그 양식과 수법은 고려 전기에 유행하였던 것을 따르고 있는 특이한 사례로서 귀부가 다소 도식적으로 표현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전대의 솜씨가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의 솜씨와 비문의 필치도 섬세하고 우수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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