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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700
한자 治葬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집필자 표인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평생 의례|상례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장지에서 시신을 매장하려고 행하는 의례

[개설]

치장(治葬) 상례에서 크고 중요한 의례로서, 장례 기간[장기(葬期)]을 정하고 매장할 땅을 고르는 것[택지(擇地)]으로 시작한다. 산신제인 사후토(祠后土), 구덩이를 파는 천광(穿壙), 회다짐을 하는 작회격(作灰隔), 지석(誌石)을 새기는 각지석(刻誌石)을 거쳐 상여·삽(翣) 등 발인 때 쓸 제구를 만드는 등의 절차가 이어지고 신주를 만드는 작주(作主)로 장례를 본격적으로 거행할 준비를 한다. 예서에 따르면 3개월 또는 1개월 만에 장례를 거행했으나, 지금은 3일 또는 5일이나 7일 만에 거행하기도 하는데, 주로 3일 만에 장례를 거행하는 게 보통이다.

장지를 결정하는 택지는 기본적으로 땅이 좋고 물이 없는 곳인데, 도로가 나지 않을 곳, 도랑이 되지 않을 곳, 농토로 바뀌지 않을 곳, 토지 개발로 묘지를 이동하지 않을 곳, 조상의 음덕을 이어 자손들이 발복할 수 있는 곳 등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치장 하는 날이 되면 자식이 없는 사람이나 일가친척으로 하여금 간단한 제물인 주과포(酒果脯)를 준비하게 하여 후토(后土) 또는 산신에게 고사를 지낸다. 그러고 나서 구덩이 위에 임시 뜸집인 묘상각(墓上閣)을 짓거나 천막을 쳐서 비나 해를 가리게 한 뒤에 천광을 한다.

천광을 하고 나서는 석회와 세사(細沙), 황토를 섞어서 구덩이 안의 네 벽을 다진다. 각지석은 죽은 이의 성명·세덕(世德)·사적(事蹟)·자손을 지석에 간단히 적어서 구덩이 앞에 묻는 것이니, 이것은 산사태나 자연재해로 봉분이 무너지거나 하여 묘지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우려하여 표시해 두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가에서는 지석 대신 종이에 써서 재를 담은 사발을 묻기도 한다.

『사례편람(四禮便覽)』에는 치장에 관하여 상여와 삽을 만들고 밤나무로 신주(神主)를 만든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예서를 보면 죽은 이가 무덤에 도착하는 급묘(及墓)의 절차는 설영악(設靈幄)·전(奠)·폄(窆)·증현훈(贈玄纁)·실회토(實灰土)·사후토·하지석(下誌石)·제주(題主)·봉주(奉主)로 되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대여가 도착하기 전에 망자를 모실 휘장막을 설치한 뒤[설영악] 대여가 도착하면 망자를 모시고 전을 올린다[전]. 영구(靈柩)가 도착하면 내려 명정으로 덮었다가 하관한다[폄]. 상주가 현훈을 축관에게 주면[증현훈] 관 왼쪽 옆에 넣는다. 나무를 횡판으로 하여 덮고 회와 흙으로 다진다[실회토]. 묘 옆에서 산신제를 모시고[사후토] 평토가 되면 지석을 묻는다[하지석]. 영좌 앞에서 신주에 글씨를 쓰고[제주] 축관이 영좌에 모시고 고축(告祝)한다. 매장 후에 혼백과 신주를 모시고 돌아오는 작은 가마인 영여(靈轝)에 신주를 모시고[봉주] 영좌를 거두어 돌아온다.

봉분을 완성할 때까지는 상제 한 사람이 남아 감독한다. 보통 봉분의 높이는 4척(尺)으로 조성하고 묘 앞에 묘표(墓表)를 세우며, 묘석으로는 혼유석(婚遊石)·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을 차례로 설치하고 망주석(望柱石) 두 개를 묘 앞 좌우에 세운다.

[절차]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치장을 하게 된다. 상여가 도착하기 전에 지관이 정하여 주는 장소에 하관 시간에 맞추어 산역(山役)[죽은 이를 묻고 묘를 만드는 일]을 할 사람을 보내고, 이들 가운데 깨끗한 사람이 제상을 차려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제를 지내고 제물 일부를 산에 던져 놓는다. 그러고 나서 개토제(開土祭)를 지낸다. 개토제란 묘소에서 땅에 손을 대기 전에 행하는 제사이다. 개토제가 끝나면 관이 놓일 방향·넓이·깊이 등을 알려 주는 지관의 지휘에 따라 하관한다.

하관은 정해진 장소에 관을 내려 매장하는 절차로서, 하관 시간보다도 상여가 미리 도착했을 때에는 병풍을 치고 상여에서 관을 내려 묘상각에 횡대를 깔고 영좌(靈座)를 설치하여 제물을 차려 놓고 조문객의 조문을 받기도 한다. 시신을 운구한 상여는 목상여인 경우는 다시 가지고 돌아와 상엿집에 보관하지만, 일회적인 꽃상여인 경우는 그 주변에서 태어버린다.

하관 시간이 되면 지관의 지휘에 따라 관의 포장을 풀고 삼베 헝겊인 공포(功布)로 관을 닦고 나서 상주들이 관을 묶었던 줄을 풀어 길게 하여 잡고서 하관할 곳에 천천히 내려놓는다. 석회를 이용하거나 석곽(石槨)을 사용했다면 관에서 시신을 꺼내어 관은 태워 버리고 시신만 무덤구덩이 안에 묻는다. 보통 관 속에 누운 죽은 이의 머리는 동쪽을 향하도록 하고 발은 남쪽을 향하도록 하니 이를 ‘좌향(坐向)’이라고 한다. 좌향도 지관의 지휘에 따라 행한다.

관이 놓이면 관과 흙벽 사이 빈 곳에 황토로 메워 관 높이까지 채운다. 이를 보토(補土)라고 한다. 관을 빼고 시신만을 묻을 때는 시신의 윗면까지 덮는다. 보토가 끝나면 관을 명정으로 덮고 왼편에는 구름무늬가 그려진 삽인 운삽(雲翣)을, 오른편에 한자로 아(亞)자 무늬가 그려진 삽인 불삽(黻翣)을 꽂고 제사를 지낸다.

모든 것이 끝나면 상주가 차례로 돌아가면서 삽으로 흙을 떠서 던지기도 하고, 상주들이 옷자락으로 흙을 담아 관의 위·중간·아래 부분의 세 곳에 조금씩 붓는다. 상주가 흙을 붓고 나면 본격적으로 산역을 하는 사람들이 구덩이 안에 흙을 넣어 채운다. 흙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한 번 다진 후에 다시 흙을 부어 채운다. 옛날에 밤나무로 신주를 만들었을 때에는 신주에 글을 써 넣는 제주를 이때 행한다.

하관이 끝나고 관 주변에 흙을 채워 본래의 높이와 평평하게 다져지면 평토제(平土祭)를 지낸다. 평토제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회다지 노래라고도 부르는 달구질소리를 부르면서 봉분을 만들고, 상주는 영좌의 신주와 혼백상자를 모시고 가던 길을 따라 집으로 되돌아온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곡이 끊어지면 혼이 따라오지 못하므로 곡을 하면서 와야 한다. 집에 가까이 오면 주부와 여인들이 곡을 하면서 이를 맞이하여 상청(喪廳)으로 모신다. 상청은 방 하나를 비워 빈실(殯室)을 만들거나 마당에 별도로 짚으로 상막을 지어 빈소(殯所)라 하고는 거기에 신주를 모신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영암 지역에서도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상여 대신 운구차를 쓰고 상두꾼들이 해야 할 노동을 굴착기로 대신하여 천광과 봉분을 만들고 있다. 다만 하관 의례는 어느 정도 지속되고 있으나 꽤 약화되었고, 신주 대신 영정 사진으로 대신하여 모시고 별도의 상청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안방에 모시는 게 보통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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