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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34
한자 崔羽平
이칭/별칭 최종익(崔鍾翼),최종익(崔鍾翌),최우평(崔友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8년 3월 22일연표보기 - 최우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12월 5일 - 최우평 심남일 의병 부대의 후군장이 됨
몰년 시기/일시 1908년 10월 27일연표보기 - 최우평 순국
추모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최우평, 건국 포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최우평,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심남일 의병 부대 후군장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개설]

최우평(崔羽平)[1878~1908]은 나주(羅州) 출신으로, 1907년 12월부터 의병 활동을 전개하여 주로 영암 등 전라남도 일대의 전투에 참여하였다. 나주 노안(老安)에서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최우평은 1908년 3월에 심남일(沈南一) 의병 부대가 600여 명의 의병을 추가로 모집할 때 부대에 합류해 후군장(後軍將)이 되었고, 1908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일본군과 항일 전투를 벌였다. 심남일 의병 부대는 1908년 3월 7일 강진(康津) 오치동(五治洞) 전투를 비롯하여 남평(南平)·영암(靈岩)·장흥(長興)·해남(海南)·능주(綾州) 등지에서 9회에 걸쳐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며 기세를 떨쳤다.

1908년 10월 27일 부대가 나주 노안에 머물러 있던 중 일본군의 습격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고, 이때 최우평은 적진에 돌진하여 싸우다가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최우평의 공훈을 기려 1986년에 건국 포장을, 199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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