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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18
한자 崔碩鎬
이칭/별칭 최성호(崔成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0년 7월 7일연표보기 - 최석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2년 6월 4일 - 최석호 영암군 덕진면 소작 쟁의 간여
활동 시기/일시 1933년 9월 29일 - 최석호 광주 지방 법원 목포 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음
활동 시기/일시 1934년 3월 7일 - 최석호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4년을 얻도받고 출옥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최석호, 건국 포장 수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최석호(崔碩鎬)[1910~?]는 영암 출신으로,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덕진면(德津面) 영보리(永保里)이다. 1930년대 초 영암에서 연극 공연 등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였고, 소작 쟁의에 간여하여 옥고를 치렀다. 최성호(崔成鎬)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활동 사항]

최석호영암군 덕진면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자식은 야학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는 당시 사회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며, 지역민을 대상으로 항일 의식 고취와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활동을 하였다. 1932년 3월 7일에는 마을 야학 회관에 200여 명을 모아 놓고 「처(妻)의 후회」라는 연극을 공연해 지역 주민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하였다. 1932년 6월 4일에는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영보정(永保亭)에서 덕진면 청년회원 70여 명을 규합, 소작 쟁의가 일어나고 있던 지역의 신구(新舊) 소작인 집으로 몰려가 잘못된 소작권 취득 행위를 응징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최석호는 1933년 9월 29일 광주 지방 법원 목포 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1934년 3월 7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4년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최석호의 공훈을 기려 1992년에 건국 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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