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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931
한자 柳浚
이칭/별칭 징원(澄遠),사교(四矯),류준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곽아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84년연표보기 - 유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23년 - 유준 의금부 도사에 임명됨
몰년 시기/일시 1661년연표보기 - 유준 사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문화
대표 관직 주부

[정의]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

[개설]

유준(柳浚)[1584~1661]은 영암 출신으로 효성이 깊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영암 모산사(茅山祠)를 세웠다.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징원(澄遠), 호는 사교(四矯)이다.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유희저(柳希渚)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감찰(監察) 유용공(柳用恭)이고 아버지는 첨정공(僉正公) 유몽익(柳夢翼)이다. 부인은 태종(太宗)의 7대손인 부원군(府院君)이경록(李慶祿)[1543~1599]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자녀는 4남을 두었는데 현감(縣監) 유성오(柳誠吾), 전력부위(展力副尉) 유신오(柳愼吾), 생원(生員) 유창오(柳昌吾), 진사(進士) 유형오(柳亨吾)이다.

[활동 사항]

유준은 1606년(선조 39) 23세 때 생원시에 급제하여 성균관(成均館)에 들었고, 1623년(광해군 15)에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자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임명되어 임금을 호위한 공로로 주부(主簿)에 승진되었다. 장년(壯年)에는 관직을 그만두고 나주 모산(茅山)에 내려가 후학을 가르쳤다. 효성이 지극해 감찰(監察)·판관(判官)에 제수되었지만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야 한다며 사양하고 향리로 돌아와 제사를 봉양하였다. 1661년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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