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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림리·동구림리 함양 박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889
한자 西鳩林里-同鳩林里咸陽朴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서원 죽정 서원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403번지지도보기
성격 동성 마을
면적 3,768,563.1㎡[서구림리]|3,987,381㎡[동구림리]
가구수 20가구[서구림리]|32가구[동구림리]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동구림리에 있는 함양 박씨 집성촌.

[개설]

함양 박씨(咸陽朴氏)는 조선 전기에 박성건(朴成乾)[1418~1487]의 구림 입향 이후 영암 지방의 유력 성씨로 발전하며 그 기반을 조선 후기까지 유지·존속시켰다. 박성건의 구림 입향 이후 처족(妻族)이자 구림 마을에 먼저 정착한 성씨였던 난포 박씨(蘭浦朴氏)와 연결되었으며, 뒤에 입향한 선산 임씨(善山林氏)와 긴밀한 유대를 가지면서 구림의 주도 성씨로서 기반을 공고히 하였다.

[명칭 유래]

구림은 군서면 동구림리, 서구림리, 도갑리 일대 마을을 일컫는 것으로 도선이 사생아로 태어나 버림받았을 때, 비둘기가 품어서 살려 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영암군 서종면(西終面)의 고산리(高山里)·동계리(東溪里)·학암리(鶴岩里)·쌍와리(雙蛙里)·신근정리(新根亭里)를 병합하여 동구림리를, 율정리(栗亭里)·서호정리(西湖亭里)·남송정리(南松亭里)·북송정리(北松亭里)·국사암리(國師岩里)와 서시면(西始面)의 신흥리(新興里)를 병합하여 서구림리를 개설하였다.

[형성 및 변천]

함양 박씨박성건의 구림 입향 이후 그 기반을 조선 후기까지 유지·존속시킨 성씨다. 조선 전기 함양 박씨들의 지위 향상에 크게 기여한 인물은 박규정(朴奎精)[1498~1580]이었다. 박규정구림 대동계의 중창자일 뿐만 아니라 임구령(林九齡), 신희남(愼喜男), 이후백(李後白), 백광훈(白光勳) 등과 함께 영암 향약을 창설하고 향안을 마련하는 주동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함양 박씨들은 1479년에 건립한 간죽정(間竹亭)을 모체로 하고 선산 임씨, 창녕 조씨(昌寧曺氏) 등 구림의 유력 성씨이자 인척간이었던 사족 세력과 유대를 다져 나갔다. 또한 임진왜란 중에는 박대기(朴大器)[1537~1601], 박승원(朴承源)[1562~?], 박경인(朴敬仁), 박흡(朴洽), 박근기(朴謹己) 등 충절 인물을 배출시켰다.

임진왜란 직후 함양 박씨 박광세(朴光世)를 중심으로 구림 대동계(鳩林大同契)가 재중수되고, 존양사(存養祠)의 창건에 함양 박씨 박응원(朴應元), 박승원(朴承源)이 사무를 맡아보던 우두머리인 도유사(都有司)로 참여하였으며, 1646년 회사정(會社亭)의 건립에도 함양 박씨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자연환경]

남도(南道)의 명산인 월출산의 서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함양 박씨는 2012년 현재 군서면 서구림리에 20가구, 동구림리에 32가구가 살고 있다. 관련 유적으로 박성건 등 5위를 배향한 죽정사(竹亭祠)와 박성건이 후학을 가르치던 서원인 죽정 서원(竹亭書院)서구림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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