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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860
한자 咸陽朴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18년 - 함양 박씨 입향조 박성건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487년 - 함양 박씨 입향조 박성건 사망
본관 함양 박씨 본관 - 경상남도 함양군
입향지 함양 박씨 입향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지도보기|동구림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함양 박씨 집성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동구림리
성씨 시조 박언신
입향 시조 박성건

[정의]

박언신을 시조로 하고 박성건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연원]

박언신(朴彦信)은 신라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속함대군(速咸大君)으로 봉해졌는데, 후에 속함(速咸)[경상남도 함양군의 옛 지명]이 함양으로 개칭됨에 따라 관향을 함양으로 삼아 함양 박씨(咸陽 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입향 경위]

함양 박씨는 조선 전기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18~1487]의 영암 구림[현재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동구림리]에 입향한 이후 영암 지방의 유력 성씨로 발전하며 그 기반을 조선 후기까지 유지하고 존속시켰다. 박성건의 구림 입향 이후 처족(妻族)이자 구림 마을의 선착 성씨였던 난포 박씨와 연결되었다. 함양 박씨와 난포 박씨는 뒤에 입향한 선산 임씨와 긴밀한 유대를 가지면서 영암 구림의 주도 성씨로 기반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

함양 박씨들은 1479년(성종 10) 건립한 간죽정(間竹亭)을 모체로 하고 선산 임씨, 창녕 조씨 등 구림의 유력 성씨이자 인척간이었던 사족 세력과 유대를 다져나갔다.

조선 전기 함양 박씨들의 지위 향상에 크게 기여한 인물은 수옹(壽翁) 박규정(朴奎精)[1498~1580]이다. 박규정구림 대동계의 중창자일뿐만 아니라 임구령, 신희남, 이후백, 백광훈 등과 함께 영암 향약을 창설하고 향안을 마련하는 데 주동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임진왜란 중에는 박대기(朴大器)[1537~1601], 박승원(朴承源)[1562~?], 박경인(朴敬仁), 박흡(朴洽), 박근기(朴謹己) 등의 충절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임진왜란 직후 함양 박씨 박광세(朴光世)를 중심으로 구림 대동계가 다시 중수되었다. 이 밖에도 존양사(存養祠)의 창건에 박응원(朴應元), 박승원이 도유사로 참여하였으며, 1646년(인조 24) 회사정(會社亭)의 건립에도 함양 박씨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현황]

영암 지역의 함양 박씨는 2012년 현재 군서면 서구림리에 22가구, 동구림리에 35가구 정도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영암 지역의 함양 박씨 관련 유적으로는 서호사(西湖祠)죽정 서원(竹亭書院)이 있다. 서호사구림 대동계에서 제수와 제물을 담당했던 사우(祠宇)로서, 원래는 구림 대동계 중수에 공이 큰 임호, 조행립, 박규정 세 사람을 향사키로 하였다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조행립 한 명을 모시는 사우로 건립되었다

죽정 서원함양 박씨가 1681년(숙종 7) 입향조인 박성건고광(孤狂) 박권(朴權)[1465~1506]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건립 후 3년 만인 1683년에 박규정이 추배되었고, 1726년(영조 2)에는 이 서원의 원장으로 있으면서 서원 발전에 공헌한 귀락당(歸樂堂) 이만성(李晩成)[1659~1723]을 다시 추배하여 중앙의 서인 노론계 인사들과도 밀접한 유대를 가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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