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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802
한자 鄭文孫孝子旌閭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안노 마을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562년 - 정문손 효자 정려 중수[1562]
개축|증축 시기/일시 1679년 - 정문손 효자 정려 중수[1679]
이전 시기/일시 1748년연표보기 - 정문손 효자 정려 이건
현 소재지 정문손 효자 정려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안노 마을지도보기
원소재지 정문손 효자 정려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문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개설]

정문손(鄭文孫)[1473~1554]의 본관은 하동(河東), 호는 모효재(慕孝齋)이다.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200여 명의 성균관생들과 함께 조광조의 신원을 구하기 위해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와 금강정을 짓고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정문손은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고,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정문손이 극진히 시묘살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그를 모효(慕孝), 살았던 곳을 모효동(慕孝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위치]

정문손 효자 정려(鄭文孫 孝子 旌閭)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안노 마을에 있다. 금대 교차로에서 안노 마을 방향으로 300m 정도 가면 정문손 효자 정려가 보인다.

[변천]

정려 현판에 ‘명종조 명정려(明宗朝命旌閭)’라고 기록되어 있어 명종 때 정려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 정문손 효자 정려 앞에 있는 비석에 “명종 을사(明宗乙巳)”라고 새겨져 있어 1545년에 창건되었다 추정할 수 있다.

정려 현판을 통해 1562년(명종 17)과 1679년(숙종 5)에 중수가 이루어졌고, 1748년(영조 24)에 이건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에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서 현재의 위치인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로 이건된 것으로 확인된다.

[형태]

사각형 시멘트 기단 위에 정면 1칸, 측면 1칸 팔작지붕의 형태로 세워졌다.

[현황]

2012년 현재 정문손 효자 정려 내부에는 ‘효자 성균 생원 하동 정문손지려(孝子成均生員河東鄭文孫之閭)’라고 새겨진 정려 현판과 「정려 중수기(旌閭重修記)」, 「모효재 정공 효 정려 중건기(慕孝齋鄭公孝旌閭重建記)」가 걸려 있다.

정문손 효자 정려의 앞에는 모효재 정선생 유적비(慕孝齋 鄭先生 遺蹟碑), 조헌 정 공 유적비(嘲軒 鄭公 遺蹟碑), 유적비의 비문을 해설해 둔 유적 비문 해설(遺蹟 碑文 解說)이 세워져 있다. 정문손 효자 정려와 비석 주변으로 철제 담장이 둘러져 있고, 정문손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하동 정씨 문중 사우인 모산사(茅山祠)에 배향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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