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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운동 협의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473
한자 全南運動協議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기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3년 5월 14일연표보기 - 전남 운동 협의회 결성
개칭 시기/일시 1933년 8월연표보기 - 전남 운동 협의회, 전남 운동 협의회에서 적색 농민 조합 건설 준비 위원회로 개칭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4년 2월연표보기 - 전남 운동 협의회, 적색 농민 조합 건설 준비 위원회 와해
성격 사회주의 협의체

[정의]

1933년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설립된 사회주의 운동 협의체.

[개설]

혁명적 농민 조합을 결성하여 계급 의식을 고취하고 지역 전위 정치 조직의 기반을 만들고자 한 사회주의자들의 협의체이다. 1933년 5월, 해남과 완도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활동가인 김홍배와 황동윤이 각자 자기 지역에서 활동하다 농민 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 운동을 지도할 기관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고 전남 운동 협의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장흥, 강진, 영암 지역에서도 지역 활동가들과 연계하였는데, 영암에서는 최규문, 최기섭영암군 군서면 출신 활동가들이 참여하여 혁명적 농민 조합 건설을 준비하다가 다른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모두 체포되었다.

[설립 목적]

1928년 12월 테제 이후 사회주의자들은 아래로부터 당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들은 지역에서 혁명적 대중 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계급 대중을 조직화하고 지역 전위 정치 조직을 건설하고자 하였는데, 1933년 전남 운동 협의회나 그 후신인 적색 농민 조합 건설 준비 위원회도 계급적 대중 조직인 혁명적 농민 조합 건설을 목적으로 했다.

[변천]

전남 운동 협의회는 1933년 8월 조직을 적색 농민 조합 건설 준비 위원회로 개칭하였다. 이는 마을 단위에서 농민반, 청년반, 소년반, 부녀반을 건설하고 면 단위 농민 조합 지부를 조직하며, 이를 토대로 군 단위 혁명적 농민 조합을 완성하여, 이를 기반으로 하여 사회주의 전위 정치 조직을 건설한다는 아래로부터 공산당 재건의 노선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영암군에서는 최규문, 최기섭, 채우동 등 군서면 서구림리 청년들이 1932년 8월부터 마을을 중심으로 동지를 포섭하고 조직을 건설하는 활동을 전개하다 이들과 연결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1934년 2월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 체포되면서 조직이 드러나 와해되었으며 사건 관련자가 3천 명, 검거된 자만 558명에 달하는 큰 사건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이들은 합법적인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중 속으로 파고들 것을 결의하였다. 영암의 활동가들도 야경단, 농촌 진흥회 등 관제 조직 속에서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데 치중하였으며, 마을을 단위로 한 소규모 조직을 만드는 데 치중하였다. 그러나 시작 단계에 그치는 바람에 크게 조직을 확대하지는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최규문광주 학생 운동에 참여하였던 인물로 영보정 사건 이후 다수의 활동가가 구속되어 활기를 잃고 있던 영암 지역 농민 운동에 다시 한 번 활력을 불어 넣었다. 최규문은 해방 이후 지역 정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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