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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농요의 원형, 영암 갈곡리 들소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012
한자 南道農謠-原形-靈巖葛谷里-
이칭/별칭 갈곡 들소리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집필자 이윤선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논일 노래.

[영산강 하류 농사 문화권에서 탄생한 영암 갈곡리 들소리]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서 전승되어 온 「영암 갈곡리 들소리」영산강 유역인 나주 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농요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나주 루트를 통해서 동쪽 화순 지역의 세화자 소리 및 북쪽 장성군의 장원질 소리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으며, ‘우야 헤헤야’ 소리라는 풍장소리를 창출해 낸 영산강 하류 문화권의 대표적인 농요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모내기를 포함한 들노래의 시원을 언제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앙법의 발달과 두레 협업의 전통을 들노래의 형성 요건으로 보기도 하지만, 논일 자체가 들소리의 형성과 관련되어 있다고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기록에 있어 그 시원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구술 자료를 토대로 확인되는 것만도 수대에 걸쳐 전승되어 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원이야 어쨌든 영산강은 늪지와 개펄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가 점차 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곡창 지대로 변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영산강변의 모든 평야를 관통하는 들노래 문화권이 형성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영암 갈곡리 들소리」의 자연 지리적 환경]

때때로 삼포강이라 불리기도 하는 삼포천영산강의 본류와 갈곡 마을을 잇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해 왔다. 흔히 나주 영산포로 흐르는 본류의 하부 지역을 영산강의 하류로 분류하는데, 이를 중심으로 보면 영암천의 지천인 금성천·양호천·호동천·회문천·군서천·구림천·학산천·용산천·상월천 등이 매개하는 하류 논농사 지대와 삼포천과 성남천·시종천으로 이어지는 논농사 지대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갈곡 마을 사람들이 영산강과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영산강 하류의 들소리 권역 속에서 갈곡 들소리가 전승되어 왔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갈곡 마을의 들판 이름 중에서 섬뜰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갈곡[종오] 마을 앞쪽에 위치한 곳으로 영암과 나주를 경계 짓는 천변의 흙무더기를 말한다. 종오 마을에서 보면 천변의 건너편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영산강과 직접 연결된 하천이 이 들녘을 매개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또, 강이나 하천과 관련된 곳으로 모락에가 있다. 모래로 형성되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모래땅이라 벼농사에는 맞지 않는 토질이기 때문에 주로 밭농사 중심의 농사를 짓고 있다. 이 또한 강모래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갈곡 마을이 영산강 하류 권역임을 말해 준다.

[영산강 일노래 문화의 특성과 교섭 양상]

갈곡리 들소리는 영암군의 대표적 논일 노래다. 신북면 갈곡리를 중심으로 들소리 회원들이 오랜 전통의 논일 소리를 전승해 오고 있다.

갈곡리 들소리를 전통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암의 지리적 위치를 먼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나주 영산포를 기점으로 누대에 걸쳐 장대하게 흘러온 영산강의 중심에 나주와 영암의 너른 들녘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륙으로 변해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영암의 평야를 답사해 보면 평야 자체가 바로 바다 같은 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무안군 몽탄면과 나주시 동강면의 곡강으로 흐르는 본류와 영암군 시종면으로 흐르는 지류는 영산강 중류의 매우 중요한 곡창 지대를 형성하는데, 이곳의 중심에 나주시 동강면·공산면·왕곡면, 그리고 영암군 시종면·도포면·신북면에서 덕진면으로 이어지는 평야들이 위치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타난 나주목 지도를 보면 영산강의 흐름이 현재의 영암, 나주 권역을 포함하여 마치 젖줄처럼 흐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갈곡리 앞 너른 들녘은 반남면 신촌리 고분군과 덕산리 고분군 등이 위치해 있어 영산강 문화권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던 곳이다. 현재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반남면 자미산을 뚫고 삼포강이 흘러 영산강의 하류 들녘과 중류 들녘을 이어왔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들녘에는 예로부터 벼농사를 비롯한 생업 활동이 이어져 왔으며, 그 안에 일노래, 특히 벼농사 관련 일노래가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 위원인 이소라에 의하면 「영암 갈곡리 들소리」영산강 유역인 나주 지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농요로, 나주 루트를 통해 동쪽 화순 지방의 세화자 소리와 북쪽 장성군의 장원질 소리가 유입되어 흥겨운 논 풍장소리를 창출했다고 한다. 이러한 갈곡리 들소리를 평생 동안 전승해 온 대표적인 소리꾼이 갈곡리의 유승림[1931년생, 남]이다. 본 기록의 선소리와 노래의 대부분은 유승림을 통해 구술되었고 채록되었다. 유승림이 가지는 들소리에서의 위상, 그리고 농사 문화로서의 권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모찌는 소리, 모심는 소리, 김매는 소리[초벌매기/오전 들내기 소리, 오후 들내기 소리, 두벌매기/오전 들내기 소리, 오후 들내기 소리, 만드리-우야 소리, 장원 풍장소리-아롱대롱] 등의 유형적 특성들이 거론된다. 나주평야와 맞닿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인 까닭에 영산강 문화권의 소리 특성을 아주 온전하게 전승해 왔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상류 지역에서 목포를 거쳐 서남해 도서 지역으로 이르는 영산강의 도도한 흐름은 들노래의 형성에 있어서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쳐 왔다. 예를 들어 지화(紙花)의 사용 유무나 머리에 넝쿨을 쓰는지의 여부, 여성과 남성의 역할 분담 등의 여부 등이 이들 문화권의 변별 요소로 작용한다.

[「영암 갈곡리 들소리」의 전승]

갈곡리 들소리는 논에서 일을 하면서 부르는 ‘들노래’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승이 된다. 처음 선소리꾼이 노래 ‘석자리’를 부른 후 같이 일을 하는 다른 사람에게 노래를 받게 하는데, 이것을 ‘전장 보낸다’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전장을 보내는 이유는 선소리꾼 혼자 노래를 부르면 힘이 들기 때문에 선소리꾼의 노고를 덜어주려는 것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고도 들노래를 할 수 있도록 노래 연습을 시키기 위함이다.

갈곡리 들소리에서는 선소리꾼 유승림이 중요한 인물이다. 유승림이 선소리를 하기 전에는 ‘해남 양반’이라 불리던 박삼길이 선소리를 했다고 한다. 이후 노래 재능을 인정받은 유승림과 함께 고인이 된 박종대가 선소리를 했으며, 다음으로 역시 고인이 된 최삼긴과 박원실도 선소리를 했지만 현재 유승림을 제외한 선소리꾼이 사망하여 현재는 유승림에 의해 선소리가 전승되고 있다.

「영암 갈곡리 들소리」는 비교적 옛 형태의 노래들이 잘 전승되고 있다. 전라남도의 서부 지역은 평야가 많은 지역으로 들노래가 잘 발달해 있다. 특히 논매는 소리에 있어서 긴소리[마소리]나 세화자 소리와 같은 들노래는 느리고 유장한 맛을 자랑하는데, 이들 악곡들의 음악적 특성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된 노래로 짐작된다. 이러한 유형의 들노래는 일로 다져진 농군들의 뱃심으로 우렁차게 노래되었을 때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영암 갈곡리는 들노래뿐 아니라 들노래와 관련된 체험적 지식이 온전히 살아 있다. 흔히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들노래들도 이제는 노래만 전승될 뿐, 농사짓는 방법이나 농사와 관련된 지적 자산들에 대해서는 거의 전승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처음 지정된 보유자가 아닌 경우에는 농사 경험이 전무하거나 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이들이 노래만을 부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들노래의 이상적인 전승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영암 갈곡리 들소리」는 현재 박호규 보존회장과 이 노래를 평생 동안 전승해 온 선소리꾼 유승림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보존회에 가입해 해마다 수차례의 공연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제30회 남도 문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이듬해인 2004년도에 제45회 한국 민속 예술 축제에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갈곡 들소리 보존회는 2003년 6월 3일에 설립되었으며, 이후 축제나 경연 대회 등에 참가하여 공연을 해 왔다.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 위원인 이소라가 영암 민요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승림 및 갈곡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들소리를 채록하면서 그 가치가 인정되었고, 이후 전라남도 문화재 전문 위원인 이윤선이 추가 조사를 실시하여 2013년에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로 지정을 앞두고 있다.

[「영암 갈곡리 들소리」의 음악적 특징]

갈곡리 들소리의 구성은 모찌는 소리, 모심기 소리, 논매기 소리, 장원 풍장소리로 되어 있다. 초벌매기와 두벌매기 때 부르는 소리를 들내기 소리라고 하는데, 오전과 오후가 다르다. 초벌매기 때 오전 들내기 소리는 “오호야”, 오후 들내기 소리는 “새화자”를 부른다. 두벌매기에서는 오전 들내기 소리로 “아리아리시구나”, 오후 들내기소리로 “오호야, 새화자” 소리를 한다. 만드리에서는 “우야소리”를 하고 장원 풍장소리에서는 “아롱자롱”을 한다. 가뭄에 두레질을 할 때도 지루함을 달래고 고통스러움을 잊기 위해, 단순하지만 숫자를 셀 때 가락을 타면서 물을 품는다. 이들 특성을 네 가지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암 갈곡리 들소리」는 비교적 옛 형태의 노래들이 잘 전승되고 있다. 전라남도의 서부 지역은 평야가 많은 지역으로 들노래가 잘 발달해 있다. 특히 논매는 소리에 있어 긴소리[마소리], 세화자 소리와 같은 들노래는 느리고 유장한 맛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러한 미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갈곡리 들소리는 전승이 원활하지 못한 형편이다. 갈곡리 들노래가 전승이 어려운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지만, 특히 음악적 난이도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 짐작된다. 많은 제보자들은 긴소리나 세화자 소리와 같은 느리고 박자가 없는 노래들을 쉽게 잊는다. 때문에 여러 제보자들이 호흡을 맞추어 이러한 노래를 전승하는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 되고 있다. 영암 갈곡리의 경우 긴소리와 세화자 소리, 만드리 소리 등 느리고 박자 구조가 복잡하거나 불규칙한 악곡들을 여러 제보자들의 제창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점에서 「영암 갈곡리 들소리」는 매우 소중한 민요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영암 갈곡리는 들노래뿐 아니라 들노래와 관련된 체험적 지식이 온전히 살아 있다. 흔히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들노래들도 이제는 노래만 전승될 뿐, 농사짓는 방법이나 농사와 관련된 지적 자산들에 대해서는 거의 전승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데, 영암 갈곡리의 제보자들은 농사 경험이 풍부하고 예로부터 전해지는 체험적 지식을 구전을 통해 전승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러한 지식을 들노래와 함께 전승시킬 수 있어야 살아 있는 들노래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셋째, 전장 보내기와 같은 농요 전승 방식에 대한 증언을 들을 수 있다. 노래전장은 소리꾼을 만들기 위한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재미 삼아 하는 놀이라고도 말한다. 먼저 간부 두 사람을 선출한다. ‘총각대방’이 있고, ‘마부’ 두 사람을 선출한다. 일꾼들을 차례대로 붙잡아 노래를 시킨다. 이를 노래전장 간다고 말한다. 노래를 못한다고 도망가는 사람은 마부가 양쪽에서 어깨를 잡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다.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않으면 총각대방이 뗏짐(양손을 등 뒤 허리로 붙잡는 자세)을 지게 한다. 모 한 폭을 떠서 노래하지 못한 사람 즉, 노래전장을 나간 사람 등에 얹어준다. 노래전장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미리 웃옷을 벗고 등을 내밀기도 한다고 한다.

전장 보내기를 통해 노래를 하도록 유도하고 교육하기도 했다는 것은 민요의 구비 전승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교육 사례라 할 수 있다. 다른 마을에서 듣기 힘든 증언 자료이다.

넷째, 만드리 논매는 소리와 길소고 등 다른 지역에 없는 독특한 음악 문화가 있다. 갈곡리의 만드리 논매는 소리는 혼소박형 장단으로 되어 있어 전라남도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길소고는 다른 지역에서 조사되고 보고된 바 없는 자료이므로 이 또한 매우 소중한 문화 자산으로서 전승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영암 갈곡리는 모찌는 소리, 모심는 소리, 초벌·두벌 논매는 소리, 만드리 소리와 장원 풍장소리인 아롱자롱의 6곡 들노래뿐 아니라 들노래를 둘러싸고 있는 전체적인 전통문화의 맥락이 여전히 기억되고 있는 마을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그리고 이제는 들노래라는 음악적 측면만 조명할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지적 자산과 체험적 지식을 모두 함께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영암 갈곡리 들소리」의 의미]

「영암 갈곡리 들소리」가 가지는 의미는 다양하다. 우선 세트화된 형태로 들소리가 남아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특히 유승림의 경우 가장 완벽하게 남도 지역의 들소리를 연행할 수 있는 가창 보유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차례에 걸쳐서 채록한 구술 자료에 다르면 거의 대부분의 논밭일을 소화해 온 이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망실된 갖가지의 전통적인 농업 용어와 농기구의 옛 이름, 일노래의 순서, 짜임 등의 전반적인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일노래의 맥락을 꿰뚫고 있는 정보 보유자들이 희소한 마당에, 특히 영산강 들녘의 일노래 정보를 상세하게 전달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일하기 방식에 있어서 ‘노래 전장’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거론하였지만 노래 전장은 모심기를 하거나 김매기를 할 때 노래를 중심으로 일과 노래가 한바탕의 신명 공간을 창출해 내는 장치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갈곡리의 제보자들은 농사 경험이 풍부하고, 예로부터 전하는 체험적 지식을 구전을 통해 전승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러한 지식을 들노래와 함께 전승하고 있기 때문에 「영암 갈곡리 들소리」는 살아 있는 들노래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인해 2013년 8월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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