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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리 백자 가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335
한자 龍山里白瓷窯址
이칭/별칭 사기 점골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용산 마을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한성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용산리 백자 가마터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용산 마을지도보기
성격 백자 가마터
지정 면적 15~20m[길이]|2m[높이]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용산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개설]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규제에도 불구하고 백자에 대한 요구는 대단히 높아 일반 사대부에게는 1616년(광해군 8) 이전부터 확대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기술이 확산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변천]

용산리(龍山里) 백자(白瓷) 가마터는 태토 비짐을 받쳐 포개 굽고 있어 17세기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후 확산되는 지방 백자 가마의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위치]

용산리 백자 가마터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용산 마을 동쪽 2㎞ 지점의 용산골에 있다. 용산골에 있는 광산 김씨 제각 전방 30m의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하는데 마을에서는 ‘사기 점골’이라고 부르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와 결과]

발굴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으며, 『고고학 지도』와 『영암군의 문화 유적』, 『영암군지』, 『문화 유적 분포 지도』 등의 문헌에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현황]

가마터는 길이 15~20m, 높이 2m 정도로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으며, 백자 조각 등이 산재해 있으나 수량은 많지 않다.

[의의와 평가]

백자는 발과 접시 등이 주로 확인되고 있어 일상 생활용기를 중심으로 생산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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