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283
한자 鹿洞書院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로 7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30년연표보기 - 녹동 서원, 존양사로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713년연표보기 - 녹동 서원, 존양사에서 녹동 사액 받음
개축|증축 시기/일시 1868년연표보기 - 녹동 서원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녹동 서원 복설
현 소재지 녹동 서원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로 73[교동리 356]지도보기
성격 서원
양식 목조 와가 맞배지붕[사우]
정면 칸수 정면 3칸[사우]
측면 칸수 측면 1칸[사우]
소유자 전주 최씨 문중
관리자 전주 최씨 문중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액 서원.

[개설]

녹동 서원(鹿洞書院)은 원래 존양사(存養祠)라는 이름으로 1630년(인조 8)에 건립되어 1713년(숙종 39)에 ‘녹동(鹿洞)’이라는 사액을 받은 영암 유일의 사액 서원이다. 창건 당시에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를 배향하다가, 1665년(현종 6)에 최덕지의 손자인 산당(山堂) 최충성(崔忠成)[1458~1491], 1695년(숙종 21) 2차 예송 논쟁(禮訟論爭)으로 영암에 유배되었던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1629~1689], 1711년에 김수항의 아들인 농암(農岩) 김창협(金昌協)[1651~1708]을 추배하여 4위를 모시고 있다.

[위치]

영암군 영암읍 교동로에 위치한다. 지방도 819호선 영암군 청소년 수련관에서 남쪽 건너편 길로 200m 정도 떨어진 월출산 언저리에 녹동 서원이 있다.

[변천]

1630년 유림의 공의로 존양사(存養祠)를 건립하여 최덕지를 배향하고, 1665년에 최충성, 1695년 김수항, 1711년에 김창협을 차례로 추가 배향하였으며, 1713년에 ‘녹동’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녹동 서원을 건립하게 된 것은 최덕지가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지내고, 노령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나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형제봉 아래에 은거한 데서 비롯한다. 이곳에 ‘존심 양성(存心養性)’을 위한 건물을 건립하고, ‘존양루(存養樓)’라 부르며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 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으로 존양루가 불에 타자, 1630년에 향인들이 최덕지를 추모하는 뜻에서 사우 건립을 추진하여 당시 영암 군수로 부임한 이선행(李善行)의 협조를 받아 월출산 남쪽 기슭에 ‘존양 사우’를 건립하였다. 존양사는 1680년(숙종 6)에 김창협, 유장옥(柳章玉) 등을 비롯한 영암 유림 85인이 연명으로 상소하여 사액을 청하였으며 1704년, 1706년, 1713년 등 계속되는 청액소에 따라 1713년 5월 16일 사액을 받았다.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 따라 헐리었고, 1977년 옛터에 다시 사우가 복원되었다.

[형태]

녹동 서원은 목조 기와 건물로 사우[신실(神室)]는 삼문과 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팔작지붕 집이다.

[현황]

녹동 서원에는 사우, 강당, 외삼문, 내삼문, 관리사, 협문이 있다. 또한 사우 뒤편에 4위의 단비(壇碑)가 있다. 또한 사액 서원답게 목판과 고문서 등 기록 자료 다수가 전해지고 있는데, 지금은 전주 최씨(全州崔氏) 고택이 있는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합경당에서 보관하고 있다. 원생들의 명단을 적은 『서원청금안』 25책, 『서원서재유안』 2책, 『심원록』 5책, 『합경재보노안』 3책 등을 비롯하여 통문(通文), 완의(完議), 노비 기증 문서 등의 고문서가 있다. 목판으로는 『연촌유사』, 『문곡집』, 『산당집』 등 모셔진 인물들의 문집 목판과 인근 지역 인물의 문집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녹동 서원은 영암에서는 유일한 사액 서원이다. 조선 후기 서원 훼철령으로 헐린 뒤 복설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1977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지어졌다. 사액 서원답게 서원 운영에 관계되는 많은 고문서와 목판들이 전해지고 있어 중요한 유물로 관리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