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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261
한자 農民運動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기훈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농민들이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식적,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사회 운동.

[개설]

직접 농업 생산에 종사하는 농민들이 지배 계급이나 국가에 대한 저항을 벌이는 일은 고대부터 자주 있었지만, 농민 스스로 자신의 독자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싸우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였다. 1894년의 동학 농민 운동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봉건적 수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개한 대규모 반제 반봉건 운동이었지만, 본격적인 근대 농민 운동은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농민 운동]

식민지 지주제의 모순이 심화되던 1920년대 영암과 가까운 암태도, 하의도, 임자도, 지도 등의 도서 지역과 나주 일대에서 격렬한 소작 쟁의가 벌어져 영암에도 영향을 주었다. 영암은 특히 일본인 대지주와 농업회사, 한국인 대지주들의 농장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1930년대 이후 사회주의 계열에서 혁명적 농민조합을 결성하려 시도했다. 해방 이후에는 좌익 계열이 농민 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영암에서도 미곡 수집령 거부 투쟁이 대규모 발생하였으나 분단과 6·25 전쟁으로 소멸했다.

[1970~80년대 농민 운동]

1950~60년대 침체되었던 농민 운동은 1970년 농촌의 소외가 깊어지면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가톨릭 농민회, 기독교 농민회 등 종교 계열의 농민 운동 단체들이 만들어져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이 확산되면서 농민 운동 단체들도 크게 늘어났다. 특히 종교 계열이 아닌 농민회가 늘어났고, 농민 단체들의 통합이 모색되어 1990년 4월 전국 농민회 총연맹이 창립되었다. 영암에서는 1980년대 학파 농장의 농민들이 간척 당시의 약속대로 토지를 농민에게 양도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으며 농민회가 결성되어 수세 폐지 운동을 벌이는 한편, 여의도 농민 시위에 참여했다.

[1990년대 농민 운동]

1990년대 들어서 농산물 수입 개방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높아지면서 수입 개방 반대 운동이 적극적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농민 운동은 우루과이 라운드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영암 농민들은 면별로 조직된 농민회를 중심으로 하여 1991년 가을에는 쌀값 보장과 수입 개방 반대를 요구하는 추수 총파업에 참가하였다. 1993년에 읍내에서 쌀 개방 반대 시위를 개최하고 농민회에서 벼 수매를 거부하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된 1994년에는 국회 비준 저지를 위한 농민 대회 등 비준 반대 운동에도 참가했다.

[2000년대 이후의 농민 운동]

1997년 이후의 농민 운동은 우선 쌀 생산비를 보장받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런데 2003년 이후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되면서 FTA 반대 운동이 전국적 차원에서 전개되었고 영암군에서도 강력한 반대 운동이 전개되었다. 수매 거부와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2006년 이후에는 벼 야적 시위를 벌였다. 2007년 3월에는 농민회와 농어민 후계자 연합회가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전국 공무원 노동조합, 현대 중공업 노조 등과 함께 한미 FTA 저지 영암군 비상 대책 위원회를 조직하여 좌담회, 국민 대회를 여는 등 활발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지금까지 농민회를 중심으로 영암 농민 운동은 농업 정책의 개선과 농민 권익 보호, 지역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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