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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16
한자 愼元範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8년 2월 6일연표보기 - 신원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2년 6월 4일 - 신원범 항일 시위 전개
몰년 시기/일시 1970년 8월 5일연표보기 - 신원범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신원범, 건국 포장 추서
출생지 신원범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지도보기
성격 노동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1932년 영암에서 시위행진

[정의]

일제 강점기 영암 출신의 농민 운동가.

[개설]

신원범(愼元範)[1908~1970]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본적과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이다. 1920년대 일본 유학을 통해 신사상을 흡수하였고, 고향에 돌아와 소작인들을 옹호하는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신원범은 1931년에 일본에서 고향 영암으로 돌아온 후 최판옥(崔判玉), 곽명수 등 지역 인사들과 신사상 연구와 항일 운동 방침에 대해 논의하였다. 일제의 삼엄한 경계로 인해 1932년 5월 1일의 메이데이 기념일에 이렇다 할 기념행사를 하지 못하게 되자, 음력 5월 1일인 1932년 6월 4일에 농민들을 규합하여 메이데이 기념 시위를 전개할 것을 모의하였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영보정(永保亭) 일대에서 김판권(金判權), 최판옥 등이 7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과 일제의 지주 옹호 정책을 규탄하는 항일 시위를 전개하였다.

신원범은 이에 동조하여 운암리(雲岩里), 백계리(栢溪里) 방면에서 소작 문제를 규탄하며 시위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가택 침입 및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 50원의 처분을 받았고,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신원범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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