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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10
한자 崔東煥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7년 12월 6일연표보기 - 최동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1년 6월 - 최동환 노동 시간 단축 요구 시위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31년 8월 20일 - 최동환 비밀 단체인 영구회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1월 - 최동환 소작료 감액 요구 운동 비료대금 선납제 철폐 및 소작권 이동 방지 등을 위한 시위 주동
활동 시기/일시 1932년 3월 7일 - 최동환 연극 「처의 후회」 공연
활동 시기/일시 1932년 6월 4일 - 최동환 소작권 쟁의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33년 9월 29일 - 최동환 광주 지방 법원 목포 지청에서 1년형을 언도받음
활동 시기/일시 1934년 3월 7일 - 최동환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 유예 4년형을 언도받고 출옥
몰년 시기/일시 1946년 2월 14일연표보기 - 최동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최동환,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최동환,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최동환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최동환(崔東煥)[1907~1946]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본적은 영암군 금정면(金井面) 아천리(鴉川里)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덕진면(德津面) 영보리(永保里)였다. 1932년 3월 영암에서 연극을 공연해 주민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고, 소작 쟁의를 주도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하였다.

[활동 사항]

1931년 6월에 영암읍 내의 도로 보수 공사에 동원된 부역 인부들과 함께 노동 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동하였다. 1931년 8월 20일에 최석호 등과 함께 비밀 단체인 영구회를 조직하여 야학을 통해 농촌 청년들의 항일 사상을 고취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1931년 11월에는 일본인 지주들을 상대로 소작료 감액 요구 운동, 비료 대금 선납제 철폐 및 소작권 이동 방지 등을 위한 시위를 주동하였으며, 1932년 3월 7일 영암군 덕진면 야학 회관에서 「처(妻)의 후회」라는 연극을 공연하여 약 200여 명의 주민들에게 항일 의식을 계몽하였다. 또한 동년 6월 4일에는 70여 명의 청년들을 집합시켜 소작권 쟁의를 주도하며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최동환은 1933년 9월 29일에 광주 지방 법원 목포 지청에서 치안 유지법 및 가택 침입 폭력 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공소를 제기하여, 1934년 3월 7일에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4년형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최동환의 공훈을 기려 1986년에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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