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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00
한자 李相哲
이칭/별칭 호정(湖亭)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광주 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한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상철(李相哲)[1912~?]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본적은 영암군 망호리(望湖里)이고, 활동 당시는 광주 농업 학교(光州農業學校) 내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었다. 광주 농업 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에 광주 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학교에서 퇴학되고 감옥에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독립 유공자 공훈록에는 호가 호정(湖亭)이라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고향 마을인 망호 마을의 명소인 망호정(望湖亭)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 사항]

이상철은 광주 농업 학교 재학 중이던 1928년 6월에 일제의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여 동맹 휴학을 주동했다. 광주 농업 학교 학생들은 평소 민족 차별이 심하던 일인 교사 모리오카[盛岡]를 배척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일인 교장 히라노[平野]에게 제출하였다. 그러나 교장은 학생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진정서에 서명한 학생들을 질책하였다. 이에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단행하자 학교는 주동 학생들을 처벌하였다. 이때 이상철은 무기정학의 징계를 받았다.

이상철은 광주 농업 학교의 항일 학생 결사인 독서회의 조직에 참가하는 등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시위대열에서 활동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고, 그로 인하여 1930년 1월 광주 농업 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또한 독서회 활동과 관련하여 구속되었다가 1930년 7월 광주 지방 법원 예심에서 면소(免訴)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상철의 공훈을 기려 1983년에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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