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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 문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876
한자 南平文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487년 - 남평 문씨 입향조 문맹화 사망
본관 남평 문씨 본관 -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입향지 남평 문씨 입향지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남평 문씨 집성지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문다성
입향 시조 문맹화

[정의]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맹화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연원]

문다성(文多省)은 신라 제20대 왕인 자비 마립간 때의 인물로 남평현[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출신이었다. 신라 지증왕진흥왕, 진지왕 대에 걸쳐 고위 관직을 지내고 남평 문씨(南平文氏)의 시조가 되었다.

[입향 경위]

문맹화(文孟和)[?~1487]가 세조의 왕위 찬탈을 계기로 관직을 버리고 처인 서흥 김씨(瑞興 金氏)[최덕지(崔德之)의 외손녀]의 본향(本鄕)인 영암[현재 전라남도 영암군]에 입향해 은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어 지금까지 세거하고 있다. 남평 문씨문익주(文益周)를 위시하여 문익행(文益行), 문익현(文益顯)[1573~1646], 문후소(文後素) 등 학행을 겸비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어 영암 향안에 입록된 인물이 21명이나 되었다.

문익주는 영암 지방의 남평 문씨들이 가장 추앙하는 인물이다. 문익주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임진왜란 중에는 김천일(金千鎰)[1537~1593], 고경명(高敬命)[1533~1592] 등과 함께 창의하였으며, 당시 사론을 이끌던 조헌(趙憲)[1544~1592], 유희춘(柳希春)[1513~1577], 이후백(李後白)[1520~1578]의 천거를 받아 벼슬을 하였다.

문익주임진왜란 직후 영암 지방의 향안을 중수한 주동 인물이었고 문후소가 황정노와 함께 영암 향교의 이건을 주도한 것을 통해 남평 문씨들이 임진왜란 직후 이 지역의 향론을 주도할 만큼 큰 기반을 마련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입향조인 문맹화의 증손 문익현은 임진왜란 직후인 1613년(광해군 5)에 영보촌[현재의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서 장암정(場岩亭) 마을[현재의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로 세거지를 옮기고 동족적인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 1667년의 장암정 동계 중수나 1668년의 남평 문씨 문족계 작성, 1687년의 양정제(養正齊) 건립 등의 결과물들은 이와 같은 동족적 결속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현황]

영암 지역의 남평 문씨는 2012년 현재 약 70가구가 영암읍 장암리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영암 지역의 남평 문씨 관련 유적으로는 영암읍 장암리에 위치한 장암정(場岩亭)이 있다. 장암정은 1760년(영조 36) 남평 문씨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장암 대동계에서 창건한 호남 지방의 대표적인 향약 집회소의 성격을 지닌 정자로, 1987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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