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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870
한자 金海金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
집필자 박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김해 - 경상남도 김해시
입향지 구음평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
세거|집성지 화소 마을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김수로왕
입향 시조 김한성

[정의]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한성(金漢城)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개설]

김해 김씨는 조선 중기에 영암 지방에 입향한 성씨로, 영암군 서호면 일대에 집거하고 있다. 입향조 김한성의 증손인 김완(金完)이 영암 향안 중수 작업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김극희(金克喜), 김함(金涵), 김여옥(金汝沃) 등 다수의 인물이 국란을 당하여 창의하거나 군공을 세웠다. 김극조·김완·김여수·김세기로 이어지는 김해 김씨 사군파는 영암 지역의 유력한 성씨로 자리 잡았다.

[연원]

김해는 금관가야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이다. 김해는 금관군(金官郡)·임해현(臨海縣)·금주(金州)·김녕부(金寧府)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고려 충선왕 때 김해부가 설치되면서 본관 명칭을 김해로 하였다. 시조는 금관가야를 일으킨 수로왕[?~199]이다. 후손들이 번창해서 김녕군파를 비롯하여 142개 파로 분파되었다.

[입향 경위]

강진에 세거하였던 김한성이 영암 서호 구음평[현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에 이주하였다. 이후 김한성의 아들인 김사종이 화소 마을[현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로 이주하였으나 일부는 몽해리에 남아 거주하였다.

한편 『김해 김씨 감무공파세보』에는 김한성의 작은 아버지 김응무(金應武)의 묘가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은적산(隱跡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김완(金完)이 태어난 생가의 건립에 대하여 5대조 김연(金鍊)이 아버지 김진문(金振門)의 뜻을 받들어 영암으로 이사하여 은거 당시 지었다고 전하고 있어, 김해 김씨의 입향 시기는 조선 초까지 소급될 가능성도 있다.

[현황]

김해 김씨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에 50여 가구, 몽해리에 5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그 밖에 미암면 두억리, 삼호읍 용앙리 등 영암 지역 곳곳에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영암 지역 김해 김씨 관련 유적으로는 1640년(인조 18)에 건립한 구고사(九皐祠)와 1817년(순조 17)에 건립한 운호사(雲湖祠)가 있다. 구고사영암군 서호면 화송리에 있으며, 김진문·김여옥·김여준·김완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운호사서호면 몽해리에 위치한 사우로, 김극희·김함·김완·김여준·김여옥을 배향한다. 또한 서호면 화송리김완 장군 유적지를 조성하여 김완 장군 영정을 모신 영당을 건립하였고, 시종면 만수리에는 김완 장군 신도비가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6.01 수정 [입향경위] 내용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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