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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851
한자 靈巖鳩林大同契文書
이칭/별칭 구림 동약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29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7월 15일연표보기 -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98호로 지정
현 소장처 강수당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29지도보기
성격 고문서|동약
관련 인물 박규정|임호
용도 동계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98호

[정의]

조선 시대 영암 구림리구림 대동계 관련 문서.

[개설]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구림 대동계 청사(廳舍)인 강수당(講修堂)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98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림 대동계(鳩林大同契)는 1565년(명종 20)에서 1580년(선조 13) 사이에 박규정(朴奎精)·임호(林浩)·이광필(李光弼)·박성정(朴星精)·유발(柳潑)·박대기(朴大器)·임완(林浣)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림 대동계임진왜란으로 한때 침체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1613년사이에 중수하였고, 1641년(인조 19)~1646년 사이에 재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일하게 화민성속(化民成俗)을 위한 향약적 성격을 명시한 설립 초기의 계 문서(契文書)가 보존되어 지금까지 운영되어 오고 있다.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강수당 옆의 회사정(會社亭)은 대동계의 창설과 때를 같이하여 지어진 회원들의 집회 장소이자 마을을 찾은 귀빈의 영접이나 경축 행사를 치르던 장소이며, 3·1운동 때 독립 만세의 기치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제작 발급 경위]

영암 구림리에서 이어져 온 대동계 문서이다. 임호가 작성한 『구림동 중수계 서(鳩林洞中修契序)』에 따르면 박규정을 동장으로 하고 임호·이광필·박성정·유발·박대기·임완 등이 주축이 되어 기존의 동계 조직을 계승·발전시켜 향약 정신을 구현함으로써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1706년(숙종 32)에 작성된 박사량(朴思諒)의 『구림동계 전말 서기』에 근거해 1565년(명종 20)에서 1580년(선조 13) 사이에 처음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게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형태]

총 3종 81책이다. 『서호동헌(西湖洞憲)』 3책[1613년], 『계 중수 좌목(契中修座目)』·『완의(完議)』[가로 26㎝|세로 34.5㎝], 『상계안(上契案)』 1책[1643년], 『좌목(座目)』[가로 24㎝|세로 31.5㎝] 1책, 『회사정 제영(會社亭題詠)』 1책, 『구림동 중수계 서』[가로 25㎝|세로 39㎝], 『부급안(賻給案)』 1책[1686년], 『상사 시 부의 물목(喪事時賻儀物目)』[가로 19㎝|세로 25.5㎝], 『동헌(洞憲)』 1책[1683년], 『춘 강신 중수(春講信重修)』[가로 18.9㎝|세로 31㎝], 『서호동안(西湖洞案)』 1책, 『계약(契約)』[가로 20.5㎝|세로 27㎝] 8책 등이다. 이 외에도 상서(上書)·품목(稟目) 4매와 「문산재(文山齋) 상량문」 4매 등의 고문서가 있다.

[구성/내용]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는 총 3종 8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계 창건의 과정을 밝히는 내용과 함께 1609~1743년까지의 동헌 규약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근래에 만들어진 완의(完議) 등을 비롯한 잡문서들도 있다. 1641년~1646년 사이에 재중수할 때 다리나 도로의 보수 등 동리의 공동 사업에 관련된 약조가 추가되었고, 태만한 사람을 벌하는 내용 등을 추가하여 상하 합계의 촌락 공동체적 기능을 더욱 강화하였다.

[의의와 평가]

마을 향약계로서 그 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호남의 대표적 동약으로, 조선 시대 동계의 성립과 운영 전반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관련 동계 책과 고문서류는 조선 시기의 향약과 동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비교적 이른 시기의 것이라는 데 특히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