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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영암수 김 낭중 서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822
한자 答靈巖守金郎中㥠書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최연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268년연표보기 - 「답 영암수 김 낭중 서서」 작성 추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6년 - 필사본 『호산록(湖山錄)』에 「답 영암수 김 낭중 서서」 수록
소장처 송광사 박물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성격 서간
관련 인물 천책|김서
발급자 천책
수급자 김서

[정의]

1268년에 진정 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이 당시 영암 태수로 재직하고 있던 김서(金㥠)에게 보낸 편지.

[개설]

고려 시대 백련 결사(白蓮結社) 제4세 사주(社主)였던 진정 국사 천책은 승려로 출가하기 이전 국자감에서 유학을 수학하고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출가한 후에도 유학자 및 관료들과 많은 편지와 시를 주고받았다. 「답 영암수 김 낭중 서서」도 그러한 편지들 중 하나로, 출가하기 전에 자신과 함께 과거에 합격하였던 동료의 아들 김서가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자 회신을 보낸 것이다. 회신에서 진정 국사김서에게 『법화경(法華經)』 독송과 불교 수행을 권유하고 있으며, 편지와 함께 『법화경』과 자신이 지은 글 일부를 보냈다.

[제작 발급 경위]

영암 태수로 부임한 김서진정 국사 천책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는데, 이는 김서의 부친이 진정 국사와 같은 해에 과거 시험에 합격한 동년(同年)이었기 때문이다. 이 편지를 받은 진정 국사는 곧바로 회신을 보냈는데, 그것이 바로 「답 영암수 김 낭중 서서」이다.

김서는 별도로 시를 지어 진정 국사에게 보냈으며, 이에 대해서도 진정 국사는 회답하는 시 두 수를 지어 보내 주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시는 진정 국사의 문집인 『호산록』 권3 및 『동문선』 권14에 수록되어 있다.

편지에서 진정 국사는 본인이 출가한 지 41년이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진정 국사는 23세 때인 1228년(고려 고종 15)경에 출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1268년(고려 원종 9)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서는 영암 태수이면서 낭중(郎中)의 벼슬에 있었는데,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1270년에도 낭중의 직책을 띠고 있었다.

[형태]

진정 국사 천책이 영암 태수 김서에게 보낸 편지는 원본은 전하지 않고, 송광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진정 국사 천책의 문집 『호산록(湖山錄)』 권4에 수록되어 있다. 동국 대학교에서 간행한 『한국 불교 전서』 제6책에 활자본으로 수록되어 있고, 허흥식의 『진정 국사와 호산록(湖山錄)』에 원문과 번역문이 수록되어 있다. 송광사 박물관의 『호산록』은 해남 대흥사의 사적을 정리한 『죽미기(竹迷記)』와 함께 1책으로 합철되어 있으며, 1916년에 대흥사에 주석하던 용은(龍隱) 주완섭(朱完燮) 스님이 필사한 것이다. 본래 대흥사에 전해지던 『호산록』과 『죽미기』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필사본의 저본이 되었던 책들은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구성/내용]

「답 영암수 김 낭중 서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은 김서에게 『법화경』 독송과 불교 신앙을 당부하는 것으로, 먼저 『법화경』 한 질을 보내니 잘 읽고 마음속에 간직하라면서 중국 고승들의 경전 독송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1236년 백련 결사를 찾아와 『법화경』을 접한 뒤 평생 이를 독송하고 나아가 『법화경』을 인쇄하여 널리 퍼뜨린 평장사 이세재(李世材)의 사례를 들고 있다.

뒷부분은 김서진정 국사의 저술을 요청한 것에 대한 답변으로, 출가한 이후 세속의 문장은 짓지 않고 불가(佛家)의 글만 지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이 그동안 지은 백련 결사문과 불교의 게송 등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초한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하면서, 후일 직접 만날 때에 그 의미를 설명해 주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답 영암수 김 낭중 서서」는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편지를 받은 김서의 부친과 진정 국사의 구체적 관계가 이야기되고 있어서, 진정 국사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진정 국사의 사대부들과의 교유 및 그들에 대한 불교 교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백련 결사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편지에 언급된 이세재의 불교 신앙 모습은 다른 자료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고려 시대 사대부의 불교 신앙에 관한 구체적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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