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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726
한자 靈巖三忠閣
이칭/별칭 삼충각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588번지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60년연표보기 - 영암 삼충각,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01년 - 영암 삼충각 개수[1901]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2년 - 영암 삼충각 개수[1932]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6년 - 영암 삼충각 중수[1946]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2년 - 영암 삼충각 중수[1982]
문화재 지정 일시 1987년 6월 1일연표보기 - 영암 삼충각, 전라남도 기념물 제108호로 지정
현 소재지 영암 삼충각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588번지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밀양 박씨 문중
관리자 박호규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제108호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박형준·박효남·박호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비각.

[개설]

영암 삼충각(靈巖 三忠閣)임진왜란 때 전사한 박형준(朴亨俊)[1548~1592]과 그의 두 아들인 박효남(朴孝男)[1568~1592], 박호남(朴好南)[?~1592] 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박형준은 예안 현감으로 재임 시 향곡(餉穀)을 거두지 못해 영암으로 유배되었다. 다음 해 유배에서 풀려나 영암에 정착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박효남, 박호남 두 아들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들어갔고, 명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에 삼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46년(헌종 12)에 유림들이 상소문을 올렸고, 1860년(철종 11)에 철종의 명정을 받았다. 삼충각은 ‘삼충사(三忠祠)’로도 불린다.

[위치]

영암 삼충각신북면 갈곡리 종오 마을 복지 회관과 갈곡 들소리 보존회 전수관 앞에 있다. 마을 복지 회관 반대편에 영암 삼충각에 대한 설명이 적힌 문화재 안내판이 있다.

[변천]

1846년(헌종 12)에 영암 유림이 발의하여 상소를 올리고, 1860년(철종 11)에 철종의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1901년과 1932년에 개수를 거친 뒤, 1946년과 1982년에 중수하였다. 1987년 6월 1일에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영암 삼충각은 방형(方形)의 시멘트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방형 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앞면에 홍살이 둘러져 있다.

삼충각 내부에는 명정 현판 3기와 비석 3기가 있다. 박형준의 명정문에 ‘숭정기원후 사 경신 상지즉조 십일년 팔월일 명정(崇禎紀元後四庚申上之卽祚十一年八月日命旌)’이라 기록되어 있어 1860년에 세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충각 앞쪽에는 사주문이 세워져 있어 출입문의 역할을 한다. 사주문은 맞배지붕으로 3량집이다.

[현황]

「박씨 삼충전(朴氏三忠傳)」의 기록이 남아 있는 『삼충록(三忠錄)』 3책의 필초본(筆草本)이 소장되어 있으며, 「계하사목(啓下事目)」, 「삼충사 행장(三忠祠 行狀)」, 「삼충사 건유사기(三忠祠 建有司記)」 등의 관련 자료도 남아 있다.

매년 음력 9월 20일에 밀양 박씨 문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영암 삼충각의 관리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참고문헌]
  • 국립 목포 대학교 박물관, 『영암군의 문화 유적』(전라남도·영암군, 1986)
  • 영암군지 편찬 위원회, 『영암군지』(영암군, 1998)
  • 목포 대학교 박물관, 『문화 유적 분포 지도』-전남 영암군(전라남도·영암군, 1999)
  • 문화재청(http://cha.go.kr)
  • 영암군(http://tour.yeongam.go.kr)
  • 인터뷰(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주민 밀양 박씨 박옥규, 남, 80세, 2012.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