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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720
한자 靈巖聖風寺址五層石塔
이칭/별칭 성풍사 터 오층 석탑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533-1번지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최연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009년연표보기 - 영암 성풍사지 오층 석탑 건립
복원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영암 성풍사지 오층 석탑 복원 공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영암 성풍사지 오층 석탑 탑지 및 청자사리 호 발견
문화재 지정 일시 1992년 1월 15일연표보기 - 영암 성풍사지 오층 석탑, 보물 제1118호로 지정
현 소재지 성풍사지 오층석탑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533-1번지지도보기
성격
양식 오층 석탑
재질 석재
크기(높이) 5.16m[높이]
소유자 국유
관리자 영암군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1118호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성풍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

[개설]

영암 성풍사지 오층 석탑(靈巖 聖風寺址 五層石塔)은 고려 시대 석탑으로 영암읍 용흥리 성풍사 터에 남아 있다. 오랫동안 무너져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하면서 ‘통화 27년 기유(統和二十七年己酉)’에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탑지(塔誌)와 청자 사리합을 발견하였다. 탑지의 내용을 통해 1009년(고려 목종 12)에 건립된 고려 시대 석탑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992년 1월 15일에 보물 제1118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영암 성풍사지 오층 석탑은 원래 2층 옥개석만 남아 있었고, 기단부와 하대 중석 등이 유실되어 있어 훼손이 심한 상태였다. 1986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1009년이란 절대 연대를 알 수 있는 탑지와 뚜껑이 달린 청자 사리합[높이 6.3㎝, 구부 직경 12㎝, 뚜껑 높이 4㎝, 뚜껑 구부 직경 13㎝]가 발견되었다. 또한 기단부를 해체한 후 기초 공사를 위해 하부 구조를 정리하다 발견된 ‘성풍대사(聖風大寺)’라는 기와 조각으로 사찰 이름이 성풍사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3층 탑신과 4층 옥개석(屋蓋石) 및 4층 탑신은 인근 마을 춘양리에서 수습되어 복원할 때 삽입하였다.

[위치]

영암군 영암읍 소재지에서 약 1.2㎞ 정도 떨어진 성풍사 터에 있다. 영암읍 버스 터미널 앞길에서 영암군 보건소 방면으로 가서, 수양 교회를 지나 우측으로 ‘소로원’[요양원]이라는 간판이 보이면 바로 우회전한다. 그 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소로원으로 가기 직전에 좌측으로 석탑이 보인다. 수양 마을 뒤편 밭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탑의 규모는 높이 5.16m이며,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건립하고 상륜(相輪)을 장식한 일반형이다. 기단은 각 층 모두 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쌓아 올렸으며, 몸돌의 모서리마다 건물의 기둥을 세운 듯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얇으며, 밑면의 받침이 3층까지는 4단이고, 4층 및 5층은 3단으로 줄어들어 일정하지 않다. 처마의 네 귀퉁이는 아래에서 올려볼 때 뾰족하게 보일 만큼 날카롭게 솟아 있다. 꼭대기의 머리 장식으로는 노반(露盤)[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과 복발(覆鉢)만이 남아 있다.

[금석문]

탑에서 출토된 탑지에는 “보살계 제자 고려국 영암현 호장 박문영 특위 방가 정성 조야 익안경 조립 오층 석탑 안치 성풍대사 영충공양야 통화 27년 기유 6월 일 기(菩薩戒弟子高麗國靈嵒縣戶長朴文英特爲邦家鼎盛朝野益安敬造立五層石塔安置聖風大寺永充供養也 統和二十七年己酉六月日記)”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명문은 ‘보살계를 받은 불제자인 고려국 영암현의 호장 박문영이 특별히 나라의 안정과 조정 및 일반 백성들의 평안을 위하여 5층 석탑을 공경하게 세워 성풍대사에 안치하고 영원히 공양함. 통화 27년[1009] 기유년 6월에 기록함’으로 해석되며, 이를 통해 영암 성풍사지 오층 석탑이 건립된 시기와 건립 주체가 명확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탑의 건립 시기와 건립 주체가 명확하게 밝혀진 탑으로서 고려 시대 초반기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