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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699
한자 金完將軍墓所-神道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386-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653년 4월 30일연표보기 - 김완 장군 묘소 및 신도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718년연표보기 - 김완 장군 묘소 및 신도비, 영암으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8월 3일연표보기 - 김완 장군 묘소 및 신도비, 전라남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
현 소재지 김완 장군 묘소 및 신도비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386-2지도보기
원소재지 김완 장군 묘소 및 신도비 - 전라남도 해남
성격 묘|신도비
관련 인물 김완
크기(높이,길이,둘레) 207㎝[비 높이]|85.5㎝[비 너비]
면적 1,412㎡
소유자 김해 김씨 문중
관리자 김해 김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제40호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완 장군의 묘와 신도비.

[개설]

영암군 시종면에 조성된 김완(金完)[1577~1635]의 묘와 신도비이다. 1979년 8월 3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영암 출신의 무신인 김완은 정유재란 때 활약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1624년(인조 2)에 발생한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에 올랐다. 이어 훈련원 도정과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건립 경위]

김완 장군 묘소는 원래 1653년 4월 30일 해남현 동북 선산에 예장하였다가 65년 후인 1718년에 시종면으로 옮겨졌다. 신도비는 이장할 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묘소의 하단에는 김완 장군이 아끼던 애마의 묘인 준마총이 있다. 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장군의 애마 역시 하늘을 우러러 길게 울부짖다가 쓰러져 죽었는데, 이런 연유로 장군의 묘역 아래에 준마총을 만들어 함께 묻었다.

[위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386-2에 있다.

[형태]

묘역의 전체 면적 약 1,416㎡에 이른다. 묘 앞에 묘비·상석·향로석이 설치되어 있고, 문인석·망주석·동자석이 각각 쌍으로 양옆에 세워져 있다. 신도비는 묘역에서 약 200m 떨어진 마을 뒷산 기슭에 서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207㎝, 너비 85.5㎝이다. 박세채(朴世采)가 찬하고, 최석정(崔錫鼎)이 전서하였으며, 조명교(曺命敎)가 글씨를 썼다. 원래 비만 세워져 있었는데, 근자에 신도비를 보호하기 위한 전각이 조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암 지역의 대표적인 역사 인물이자 위국충절의 상징인 김완 장군의 묘와 신도비는 영암 군민들의 자부심과 애향심을 진작시키는 사적지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영암군에는 보물 제1305호 지정된 「김완 초상」을 비롯하여 장군의 고택과 사당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후세들의 교육 장소이자, 지역 문화 자원으로서 활용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