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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624
한자 靈巖貞元銘石碑
이칭/별칭 구림리 매향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776-7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최연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786년연표보기 - 영암 정원명 석비,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5년 - 영암 정원명 석비 최정호 발견
이전 시기/일시 1965년 - 영암 정원명 석비 최정호 집으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2월 5일연표보기 - 영암 정원명 석비,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81호 지정
현 소재지 영암 정원명 석비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776-7지도보기
성격 매향비
재질 석재
크기(높이,너비,두께) 128㎝[높이]|28㎝[너비]|27㎝[두께]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81호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남북국 시대 석비.

[개설]

영암 정원명 석비(靈巖 貞元銘 石碑)는 1965년경 군서면 서구림리에 거주하는 최정호가 집 근처 논에서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내용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1987년 영암군 문화 공보실에 근무하는 박정웅의 조사로 통일 신라 시기인 786년에 건립된 비석임이 밝혀졌다. 이후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비문 판독이 시도되고 역사적 의의가 검토되었지만 판독과 해석에 이견이 있어 아직 완전한 이해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영암 정원명 석비는 ‘구림리 매향비’로도 불린다. 1990년 2월 5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81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통일 신라 시기인 786년(원성왕 2)에 바닷가 갯벌에 향을 묻은 후 그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영암 정원명 석비는 2013년 현재 최초 발견자인 최정호의 집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776-7번지에 세워져 있다.

[형태]

자연석을 약간 다듬은 돌기둥 모양으로 글씨는 전면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128㎝, 너비 28㎝, 두께 27㎝이다.

사진과 탁본 자료에 따르면 4행 40여 자가 확인되지만 판독되지 않는 글자가 다수 있다. 집필자의 견해로는 다음과 같이 판독된다.

① 貞元二年丙寅五月十日渚坪外香藏內不忘

② 立□奇卅夫□□□□中 合香十束

③ 入奇□人名力知 焉生 右

④ 仁閂

첫 번째 행의 내용은 ‘정원(貞元) 2년 5월 10일에 저평(渚坪) 바깥에 향을 묻고 잊지 않기 위해 [비석을 건립한다]’로 해석된다. 정원 2년은 786년이고, 저평은 물가의 땅을 의미한다. 물가 근처의 땅에 향을 묻은 것은 후대 자료에 다수 보이는 매향(埋香)과 관련된 것이다. 매향은 후세에 올 부처님께 공양할 침향(沈香)을 만들기 위해 향나무를 바닷가 갯벌에 묻어 두는 것이다. 향나무를 갯벌에 백 년 이상 묻어 두면 고급 침향이 되기 때문에 미래에 공덕을 쌓기를 원하거나 미륵불의 탄강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매향을 행하였다. 비석이 발견된 곳은 근대에 매립된 곳으로 그 이전에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벌이었다.

둘째 행에 보이는 ‘합향 십속(合香十束)’은 당시 땅에 묻은 향의 분량을 기록한 것으로서 주목된다. ‘모두[合] 열 다발[束]의 향(香)’이라고 해석된다. 셋째와 넷째 행은 매향에 관여한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영암 정원명 석비는 전라남도 지역에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금석문 자료로서 전남 지방, 특히 월출산 지역의 고대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고대의 매향 신앙과 관련된 자료로서도 주목된다. 매향 사실을 기록한 매향비 혹은 매향 암각은 현재 20여 건 가까이 확인되고 있는데, 대부분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 초까지의 것이다.

영암 정원명 석비는 통일 신라 시기의 매향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향에 관한 자료이다. 통일 신라 시기 불교 신앙과 우리나라 매향 신앙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