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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성산성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610
한자 弓城山城址
이칭/별칭 북 궁성산성 터,활성산성 터,활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기동 마을
시대 고대/고대
집필자 고용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궁성산성 터,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시행
소재지 궁성산성 터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기동 마을지도보기
성격 산성 터
지정 면적 700m[둘레]|약 10m[너비]|약 5~6m[높이]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에 있는 산성 터.

[변천]

궁성산성(弓城山城)에 대한 문헌 기록과 일제 강점기까지의 조사 기록은 전혀 찾아지지 않는다. 궁성산성이 있었던 금정면(金井面) 지역은 삼국 시대 때부터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이다. 백제 때 아로곡현(阿老谷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야로현(野老縣)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나주목(羅州牧)에 편입된 이래 조선 시대까지 계속 나주목 소속으로 남아 있었다가, 조선 후기 때 금마면(金磨面)과 원정면(元井面)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에 이들 지역이 영암군(靈巖郡)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두 개의 면이 금정면(金井面)으로 통합되어, 2013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치]

궁성산성 터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기동 마을 궁성산(弓城山)[484.1m]에 있다. 영암군 금정면 지역에는 세류리와 나주시 봉황면 덕곡리의 경계 상에 위치한 궁성산성이 있고, 그보다 동남쪽 3.5㎞ 떨어진 마봉산성(馬峰山城)이 장흥군 유치면과 나주시 봉황면을 잇는 교통로의 남쪽에 분포하고 있다. 궁성산성은 돌로 쌓은 석성이며, 마봉산성은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축조 재료뿐만 아니라 규모 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궁성산성은 1986년에 목포 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 때 존재가 확인되었고, 1999년에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작성할 때 다시 확인되었다. 궁성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 및 배경은 알 수 없다.

[현황]

궁성산성은 기동 마을 북서쪽에 형성된 궁성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궁성산성을 마을 주민들은 ‘활성산성(活城山城)’ 또는 영암읍 활성산성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북 궁성산성(北弓城山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군사와 말을 훈련시키고 화살을 쏘는 연습장으로 활용하였다 하여 ‘활터[사장(射場) 터]’라고도 한다. 궁성산성은 능선 비탈의 급경사면을 이용하여 할석재(割石材)로 쌓은 둘레 700m의 석성으로 평면 형태는 대체로 타원형에 가깝다. 성벽은 1~2단이 남아 있는 두서너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완전히 무너진 상태이다. 높이 약 5~6m, 너비 약 10m에 걸쳐 무너진 성 돌이 쌓여 있다. 칡넝쿨과 가시덤불로 뒤덮여 있어 성벽의 축성 기법과 성문지(城門址), 건물지(建物址), 우물지 등의 부대시설은 파악하기 힘든 상태이다. 궁성산성의 서쪽 비탈에 기와 조각이 집중되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궁성산성은 남동쪽에 있는 마봉산성과 함께 장흥군 북부의 유치면과 나주시 남부의 봉황면 덕곡리를 잇는 교통로의 남쪽에 위치한 산성으로, 축조한 목적 또한 이들 교통로를 감시·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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