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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신연리 고분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585
한자 靈巖新燕里古墳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1151-9 외
시대 고대/고대
집필자 장대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7년 1월 15일연표보기 - 영암 신연리 고분군,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39호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1년 - 영암 신연리 고분군 제9호분 국립 광주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행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5년 - 영암 신연리 고분군 제8호분·제11호분·제14호분·제15호분 국립 광주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행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 영암 신연리 고분군 제9호분·제10호분·제13호분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행
소재지 영암 신연리 고분군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1151-9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 광주 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산83-3
출토 유물 소장처 전남 대학교 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300
성격 고분군
크기(높이,지름) 10~19m[길이]|1~3m[높이]
소유자 국유
관리자 영암군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39호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뒷모실 마을에 있는 고대 고분군.

[개설]

영암군에는 40개 군 150기에 달하는 독무덤[甕棺墓]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시종면을 중심으로 25개 군 100여 기가 모여 있다. 특히 내동리, 신연리, 옥야리에 가장 밀집해 있으며 영암 신연리 고분군(靈巖 新燕里 古墳群)은 15기로 추정하여 각 고분마다 고유 번호를 붙였다.

[위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뒷모실 마을 일원 1151-9번지 일대에는 15기 이상의 영암 신연리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뒷모실에 길이 10~19m, 높이 1~3m의 장방형, 타원형 형태의 고분 15기가 분포하고 있다. 고분은 뒷모실 마을 뒤쪽에 남북으로 활처럼 휘어져 뻗어 내린 구릉의 정상부에 있는데 마치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5기의 고분 중 제9호분이 1991년 국립 광주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으며, 1995년에 제8호분·제11호분·제14호분·제15호분, 1996년에 제9호분·제10호분·제13호분에 대한 시굴 조사가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모두 고분군의 복원 정비를 위한 기초 자료의 획득이 목적이었다.

제9호분은 봉분의 형태가 방대형으로 봉분 자락에 도랑을 돌렸다. 봉분 내에서는 널무덤 3기, 독무덤 4기의 유구가 확인되어 널무덤과 독무덤이 공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독무덤은 이음식[합구식(合口式), 항아리 두 개를 마주 보게 설치한 형태], 합개식(合蓋式)[큰 항아리에 뚜껑 또는 덮개용의 작은 토기를 결합시킨 형태], 단옹식(單甕式)[시체를 담는 항아리가 하나인 형태]이 사용되고 있다.

봉분의 자락으로는 도랑을 파 돌렸는데, 모서리 부분보다 가운데를 더 깊게 팠으며, 도랑을 파면서 나온 흙을 성토에 이용함으로써 작은 노력으로 봉분의 고대화(高大化)를 꾀한 의도가 나타나고 있다.

제9호분도 시종면 만수리 고분군의 4호분처럼 움무덤이 봉분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어 주 매장 시설임을 말해 주고 있다. 독무덤은 전용 옹관을 사용하여 합구식, 합개식, 단옹식이 사용되고 있다.

봉분 밑바닥에서는 고분이 축조되기 전의 원 삼국 시대 주거지 4기가 확인되었다.

[형태]

시굴 조사된 8기의 고분은 장방형 또는 장방형에 가까운 사다리꼴의 평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모두 도랑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출토 유물은 토기류, 철 조각, 옥류(玉類) 등과 다양한 형식의 묘제들이 확인되었다.

[현황]

영암 신연리 고분군은 제9호분이 1991년에 봉분이 복원되었고, 1995년에 3기, 1996년에 4기의 봉분이 복원되었다. 1987년 1월 15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암 신연리 고분군은 봉분 바닥에서 무덤이 만들어지기 전에 지어진, 원 삼국 시대의 주거지 4기가 확인되었다. 동일한 장소에서 취락과 무덤 유구가 겹쳐서 조사됨으로써 성격을 달리하는 이들 유구의 선후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 줌은 물론이고 고분 축조에 따른 축조 집단의 사상적 측면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유물과 무덤 축조 방법으로 보아, 4세기 전반에서 후반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