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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축성암 목조 나반존자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513
한자 靈巖祝聖庵木造那畔尊者像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 217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경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00년 - 영암 축성암 목조 나반존자상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 12월 13일연표보기 - 영암 축성암 목조 나반존자상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210호로 지정
현 소장처 축성암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면 용당리 2175지도보기
성격 명부상
재질 목조|은행나무
크기(높이) 46㎝[총 높이]|19.5㎝[어깨 너비]|22.5㎝[무릎 너비]|11㎝[대좌 높이]
소유자 축성암
관리자 축성암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210호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면 용당리 축성암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나반존자상.

[개설]

축성암(祝聖庵)은 1927년경 목포항을 바라보는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고 1990년대 초 삼호 조선소 조성 단지로 편입되면서 1994년에 남쪽으로 1.5㎞ 떨어진 현재의 장소로 이전되었다. 영암 축성암 나반존자상(靈巖 祝聖庵 木造 那畔尊者像)은 한지에 묵서한 발원문[가로 118㎝×세로 26㎝]에 따라 1700년(숙종 26)에 해남 성도암에서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원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강희삼십구년경진삼월이십구일조성서구타라니주제일빈두노발라타도존자상봉안우 두륜산 성도암 원이 차공덕보급어 일체아등여중생 개공성불도주상삼전 수만세국태민안 법륜전제일존자 원불시주……(康熙三十九年庚辰三月二十九日造成西瞿陀羅尼洲第一賓頭盧跋羅墯闍尊者像奉安于 頭輪山 成道庵 願以 此功德普及於 一切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主上三殿 壽萬歲國泰民安 法輪轉第一尊者 願佛施主……)”

또한 영암 축성암 나반존자상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조선 시대 가섭 존자상(迦葉尊者像)과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형태]

영암 축성암 목조 나반존자상은 눈썹이 길고 미소를 띠고 있다. 인자함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두상(頭像)은 승려의 민머리로 하였으며 목에는 근육이 표현되었다. 두 손을 포개고 선정에 든 자세이다. 선정인의 수인(手印)을 강조하여 손이 조금 크다. 승려의 옷인 청색 장삼을 입고 그 위에 홍색 가사를 입었다. 바위를 대좌(臺座)로 하여 앉아 있으며 옷이 바위를 덮었다. 뒷머리와 등에 복장(服藏)을 넣었던 자리의 흔적이 있다.

[특징]

대승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보살도(菩薩道)의 궁극적인 목적은 불성(佛性)의 자각(自覺)이며, 소승 불교에서는 부처가 가르친 길을 따라가는 최고 단계를 아라한[나한]으로 보고 있다. 나반존자는 18나한 가운데의 하나인 빈두루 존자이며 열반하는 석가모니 부처로부터 중생 구제를 당부 받았던 4제자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독특하게 나반존자상은 조선 후기 이후 스스로 도를 깨우친 성자(聖者)의 측면을 강조하여 독성각(獨聖閣) 혹은 삼성각(三聖閣)에서 주존(主尊) 격의 독성 존자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영암 축성암 목조 나반존자상은 1700년에 해남 두륜산 성도암에서 가섭 존자 등의 나한상들과 함께 제작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암 축성암 목조 나반존자상은 1700년이라는 조성 연대가 알려져 조선 후기의 목조 조각 및 복식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또한 2000년 12월 13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210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