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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491
한자 靑年團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기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6년 - 청년단 조직
해체 시기/일시 1945년 8월 - 청년단 해체
성격 청년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있었던 관제 단체.

[설립 목적]

일본 제국주의는 청년단을 조직하여 젊은이들이 민족 운동에 참가하는 것을 차단하고 제국주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청년들을 동원하고자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본격화되자 일제는 청년단에 모든 청년이 가입하도록 하고 청년 훈련소를 확대한 청년 연성소를 개설하여 예비 군인으로 훈련하고자 했다.

[변천]

1920년대 민족 운동의 중심에는 각지에서 결성된 청년회, 청년 동맹 등 청년 단체들이 있었다. 특히 192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확산된 사회주의 운동에서는 청년 학생층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일제는 청년층 통제를 위한 조직으로 청년단을 조직했다.

일제의 관제 청년단은 면을 단위로 하여 조직하였으며 보통학교 교장이 단장, 면장, 주재소장, 면협 의회원 등 이른바 유지들이 부단장을 맡았다. 1941년 이전에는 일부의 청년층만을 청년단에 참가시켰는데, 보통학교 졸업생들을 의무적으로 참가시키기도 했다.

1941년 1월에 조선 총독부는 정무 총감 통첩으로 ‘청년단 조직 및 지도에 관한 건’을 발포하여 학교 교육을 받지 않는 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인 조선 청년단을 확대 조직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영암에서는 1936년 5월에 서호면에서 보통학교 교장을 단장으로, 면장을 고문으로 하는 영풍 청년단이 창립되었다는 기사가 보인다[『매일 신보』, 1936. 5. 23.]. 1937년 청년 단원 300여 명이 모여 영암군 청년단 대회를 개최하고 신사 참배를 마치고 해산하였다는 기사도 확인되었다[『동아 일보』, 1937. 10. 19.].

한편 일제는 1929년 청년 훈련소 규정을 발표하고 일부 지역에 청년 훈련소를 설치하여 군국주의 사상과 군사 훈련을 실시하도록 했는데, 중일 전쟁 이후 청년 훈련소를 급격히 확대하였다.

1942년 10월 ‘조선 청년 특별 연성령’을 공포하고 청년 특별 연성소(靑年 特別 鍊成所)를 설치하도록 했는데, 이는 청년들에게 일본어 및 군사적 기초 훈련을 실시하여 강제 징병의 기초를 다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1940년대 영암의 보통학교에도 청년 특별 연성소가 설치, 운영되었다.

[의의와 평가]

관제 청년단, 청년 특별 연성소는 전시 동원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해산되었으나 그 경험은 제1 공화국 하에서 관제 청년 조직의 발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억압적인 통제 조직으로서 청년단은 시민 사회를 억압하는 폭압적인 국가 기구로 해방 이후에도 식민 통치의 잔재를 남기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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