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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원갈곡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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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였던 해남군 북일면 남창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선소. 선소(船所)는 배를 정박하거나 수리하는 포구를 말한다. 고달도 선소(古達島 船所)는 남창 마을 해월루의 남쪽에 있는데, 고달도는 현재는 전라남도 해남군 남창 마을에 속하나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에 속하였다. 또한 고달도는 달량, 이진, 남창 등으로 불리었다. 고달도는 조선 초기에는 달량이라고 하였다가,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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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에 있는 산성 터. 궁성산성(弓城山城)에 대한 문헌 기록과 일제 강점기까지의 조사 기록은 전혀 찾아지지 않는다. 궁성산성이 있었던 금정면(金井面) 지역은 삼국 시대 때부터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이다. 백제 때 아로곡현(阿老谷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야로현(野老縣)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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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 인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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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남송리에 있는 쌍계사 터. 쌍계사는 854년(신라 문성왕 16)에 백운 대사(白雲大師)가 창건하고 그 뒤 1065년(고려 문종 19)에 호연 대사가 중창했다고 하나 쌍계사가 어느 시기에 폐사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남송리 쌍계사 터는 ‘남송리 쌍계사지’라고도 불린다. 남송리 쌍계사 터는 금정면(金井面) 남송리(南松里) 인곡 마을 뒤편 국사봉(國師峰)과 덕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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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제의를 행하던 신사의 터. 남해당지(南海堂址)는 남해신사(南海神祠)의 제의를 행하던 신사 터로, 고려 시대 전라남도 지방의 국가 제사 중의 하나를 모시던 곳이다. 조선 시대의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국사(國祀)를 모신 삼대 해신사(海神祠)를 기록하고 있다. 동해를 수호하는 동해묘(東海廟)를 강원도 양양에, 서해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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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에 있는 산성 터.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따르면, 옛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던 군서면(郡西面)에는 성묘산 정상부에 위치한 성묘산성(城妙山城)과 월출산 죽순봉의 가지 능선 상에 위치한 도갑산성(道岬山城) 등 2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도갑산성이 있는 군서면은 영암읍 및 덕진면(德津面) 지역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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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청용리 동산 마을에 있는 산성 터. 금정면(金井面)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이다. 백제 때 아로곡현(阿老谷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야로현(野老縣)으로 이름을 바뀌면서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나주목(羅州牧)에 편입된 이래 조선 시대까지 계속 나주목 소속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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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선인정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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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 호동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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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상사 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가마터.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는 퇴화된 상감 청자가 전국에서 생산되었는데 이것이 점차 변모하여 실용적 형태로 바뀌고, 무늬가 그릇 전체로 확대되며, 유약의 투명도가 높아졌다. 이렇게 변모한 상감 청자를 분청사기라고 한다. 분청사기는 여말 선초의 사대부들이 추구하였던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과 맞아 떨어져 대량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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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선황산에 있는 산성 터. 영암군(靈巖郡) 미암면(美岩面)을 비롯하여 학산면·서호면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 고미현(古彌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 곤미현(昆湄縣)으로 이름이 바뀌고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 1080년(문종 34)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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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성묘산에 있는 산성 터.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따르면, 옛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던 군서면(郡西面)에는 성묘산(城妙山) 정상부에 위치한 성묘산성(城妙山城)과 월출산 구순봉의 가지 능선에 위치한 도갑산성(道岬山城) 등 2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성묘산성이 입지하고 있는 군서면은 영암읍 및 덕진면 지역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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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성산에 있는 산성 터. 영암군(靈巖郡) 미암면(美岩面)을 비롯하여 학산면·서호면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때까지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 고미현(古彌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757년(경덕왕 16)에 곤미현(昆湄縣)으로 이름이 바뀌고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으며, 1080년(고려 문종 34) 이래 계속 영암군에 속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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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성틀봉에 있는 토성 터. 성틀봉(성틀峰) 토성(土城) 터가 자리 잡고 있는 시종면(始終面)은 신북면과 함께 백제 때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에 속해 있었다.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반나부리현이 반남군(潘南郡)으로 이름과 격이 달라지면서 큰 고을을 이루었다. 금정면 지역에 있던 아로곡현(阿老谷縣)이 야로현(野老縣)으로, 미암면·학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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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에 있는 통일 신라 때의 도기 가마터. 영암 구림리 요지(靈巖 鳩林里 窯址)는 통일 신라 말에 운영되었던 대단위의 도기 생산 유적이다. 학술적 조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간헐적으로 실시되었으나 1987년과 1996년에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행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의 돌정 고개로 불리는 구릉 상에 있다. 이곳은 월출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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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에 있는 고려 때의 목탑 터. 영암사자사목탑지(靈巖師子寺木塔址)는 사자사 절터에 있는 다층의 목탑 유구(遺構)이다. 사자사 절터는 영암 월출산 사자봉 중턱에 있는데 그동안 천황사(天皇寺)라고 불리다가 1995년 발굴 조사에서 ‘사자사(師子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됨으로써 이름이 새롭게 밝혀졌다. 사자사 목탑 터에서 통일 신라 후기에 조성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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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남풍리·동무리·역리에 걸쳐 있는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읍성 터. 영암읍성이 있는 영암읍 일대는 삼국 시대부터 군현이 설치되어 운영되어 왔던 곳이다. 백제 때 월나군[月奈郡]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에 영암군(靈巖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성종 때는 일시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하였으며, 1018년(현종 9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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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용산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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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월출산 아래에 있는 절터. 월곡리(月谷里) 월암사(月岩寺)는 신라 말 승려 도선 국사(道詵國師)의 출가지로 전해지고 있지만, 출토 유물로 보면 고려 시대부터 조선 후기 사이에 존재하였던 사찰로 추정된다. 1986년에 절터 근처에서 ‘월산군(月山君)’이라는 명문(銘文)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고, 주변에 기단 석축(石築)과 깨어진 기와 조각이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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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는 용암사의 폐사지. 월출산(月出山) 용암사(龍巖寺) 터는 영암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는 폐사지(廢寺址)로서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 여래 좌상과 삼층 석탑 2기(基), 조선 시대 후반의 부도 2기가 현존하고 있으며, 문헌 기록과 출토된 기와의 명문을 통해 용암사 터임이 확인되었다. 월출산 용암사 터는 ‘용암사지(龍嵒寺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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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천황봉에 있는 제사 유적 터. 월출산은 영암의 진산(鎭山)으로 통일 신라 때부터 사용된 영암군이란 고을 이름도 월출산 구정봉 아래의 동석(動石)에서 유래하였다. 신라 때는 월내산[月奈岳]이라 불렸는데, 영암의 백제 때 고을 이름이 월내군(月奈郡)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로부터 유래한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고려 시대 때는 월생산(月生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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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 양동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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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성기동에 있는 도선 국사의 탄생 유적지. 왕인 박사 유허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성기동 집터의 마당 바위에는 ‘고 최씨원 금 조가장(古崔氏園 今曺家莊)’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예전에는 최씨의 정원이었고 지금은 조씨 집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통일 신라 말의 고승인 도선 국사(道詵國師)[827~898]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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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 미중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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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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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와 한대리, 금정면 연소리의 경계인 활성산에 있는 산성 터. 활성산성(活城山城)이 입지하고 있는 영암읍 일대는 삼국 시대 때부터 군현(郡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어 왔던 곳이다. 백제 때 월내군(月奈郡)[월나군]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에 영암군(靈巖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성종(成宗)[960~997] 때는 일시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