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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리 백자 가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339
한자 鶴溪里白瓷窯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한성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영암 학계리 백자 가마터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지도보기
성격 백자 가마터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개설]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규제에도 불구하고 백자에 대한 요구는 대단히 높아 일반 사대부에게는 1616년(광해군 8) 이전부터 확대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기술이 확산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변천]

굽 안 바닥의 곡면이 얕은 변형 오목 굽을 갖고 있으며 태토 비짐을 받쳐 포개 굽고 있어 학계리(鶴溪里) 백자(白瓷) 가마터는 17세기 후반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조선 후기 지방 백자 가마의 양상을 보여 준다.

[위치]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에 있는 현천사의 오른쪽 높이 1~2m의 나지막한 구릉에 있다. 또한 이곳에서 2㎞ 정도 떨어진 청룡사 터 주변에도 백자 가마터가 분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와 결과]

발굴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으며, 『영암군의 문화 유적』과 『영암군지』, 『문화 유적 분포 지도』 등의 문헌에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현황]

가마터 주변에 자기 조각과 도지미[도자기를 구울 때 사용되는 받침] 등이 흩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발과 접시, 종지 등의 백자가 확인되어, 반상기(飯床器)를 비롯한 생활 용기를 주로 생산하던 가마터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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