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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330
한자 靈巖鳩林里窯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 320 외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한성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7년 12월연표보기 - 영암 구림리 요지, 이화 여자 대학교 박물관 1차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10월 31일연표보기 - 영암 구림리 요지, 사적 제338호로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12월연표보기 - 영암 구림리 요지, 이화 여자 대학교 박물관 2차 발굴 조사
현 소재지 영암 구림리 요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 320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이화 여자 대학교 박물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현동 11-1
성격 도기 가마터
지정 면적 3,669㎡
소유자 국유
관리자 영암군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제338호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에 있는 통일 신라 때의 도기 가마터.

[변천]

영암 구림리 요지(靈巖 鳩林里 窯址)는 통일 신라 말에 운영되었던 대단위의 도기 생산 유적이다. 학술적 조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간헐적으로 실시되었으나 1987년과 1996년에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행되었다.

[위치]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돌정 고개로 불리는 구릉 상에 있다. 이곳은 월출산을 남쪽에 둔 양지 바른 곳으로 낮은 구릉이 상대포까지 700~800m에 달하는데 가마터는 이 구릉 전체에 분포하고 있다. 가마터가 위치한 구림리영산강 지류를 경계로 3~5세기의 독무덤과 움무덤이 밀집된 시종면·도포면과 접하고 남쪽으로는 학산면·성전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와 결과]

1987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이화 여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구림리 가마터월출산 서쪽의 동-서로 뻗은 구릉 단면에 20여 기의 가마와 도기 조각들이 밀집 분포한 대단위 도기 제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발굴 조사는 가마터의 성격을 밝히고 유적의 효율적인 보존과 활용을 위해 실시되었다. 1987년에 1차 발굴 조사를 마치고 유적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사적 제338호로 지정되었다. 1996년 실시된 2차 발굴 조사는 1차 조사에서 가마 입구가 확인된 동쪽 가마의 전모를 확인하기 위해 실시하였다.

가마는 석비레층[푸석푸석한 돌이 많이 섞인 흙으로 된 지층] 경사면의 아래에 굴을 파고 들어간 지하식 한 칸[單室] 오름 가마[登窯]로 가마 바닥은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소위 독사 머리 모양이다. 가마 바닥은 앞쪽의 경사가 10도 내외를 유지하다 뒤로 갈수록 20~25도로 경사가 급해지고 너비가 좁아져 가마 끝 부분이 굴뚝이 되어 수직으로 올라가는 구조이다. 봉통[연소실]은 타원형이고 봉통 입구에는 할석으로 구성된 배수로 시설이 있는 점이 특징이다. 가마 규모는 길이 4.7m, 너비 2.3m이다. 이러한 구조는 고창 운곡리와 익산 신용리 가마 등에서 발견되는 백제 토기 가마와 비슷한 구조로 백제 가마의 계승성을 엿볼 수 있다.

[현황]

구림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도기들은 삼국 시대 고분 출토품이나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 토기와는 다른 유형으로 목이 짧고 좁으며 몸이 긴 사각편병(四角扁甁)과 휴대하기 편리한 높이 5~6㎝의 줄무늬가 있는 작은 편구형병(偏求形甁)이 있고 고구려 토기에서 보이는 원반형(圓盤形) 도기 등이 있다. 또한 편병과 작은 병 등 운반에 편리한 형태가 등장하고 있으며, 큰 항아리와 사각병, 작은 단지가 조합을 이루어 대량 생산되고 있다. 이외에도 대접과 주전자, 단지, 바래기, 시루, 솥 등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일상 생활용기들로 회색 경질의 환원 번조(燔造)의 도기가 대부분이며 약간의 회색 연질 도기가 있다.

구림 도기 의 성형 방법은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온 토기 제작 방식으로 그릇의 밑판을 만들고 그 위에 타래 또는 흙 판을 쌓아 올리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작은 병의 경우 물레를 사용하여 흙덩어리에서 뽑아 올리고 있어 발전된 방법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영암 구림리 요지는 1990년 10월 31일에 사적 제338호로 지정되어 2013년 현재 관리되고 있으며, 발굴 조사된 2기의 가마는 보존 수복하여 보호각을 세워 공개하고 있다. 또한 가마터 주변에 영암 도기 박물관이 건립되어 유적의 관리와 연구, 수집, 전시, 교육, 재현, 판매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암 구림리 요지는 통일 신라 말 10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하는 시기에 제작 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마의 구조는 반지하식으로 봉통부와 굽는 방[번조실 또는 소성실]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굽는 방을 1개만 가진 구조와 세련된 도기를 생산하고 있어 시대적 특징을 갖춘 가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통일 신라에서 고려 시대로 옮겨가는 전환기의 가마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가마 구조는 강진과 해남을 비롯한 남부 지방에 분포하는 초기 청자 가마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 청자 발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작은 병을 만들 때 사용한 물레 성형도 도기에서 자기로의 기술 진입을 보여 주는 제작 기법으로 이후 고려청자의 제작에 계승되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한편 영암 구림리 요지에서는 처음으로 유약을 입힌 녹갈색과 황갈색의 시유 도기(施油陶器)가 제작되고 있는 것도 매우 특징적이다. 이는 도기가 자기로 발전해 가는 기술 발전의 단계를 보여 주는 것으로서 그 기술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유적이 위치한 구림리에 일본과 중국으로 나가는 뱃길이 열려 있는 국제 항구 상대포가 있어 이를 통해 대량 생산된 구림 도기가 완도 청해진 등 주변 지역에 널리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영암 구림리 요지는 통일 신라 말 상대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사회 경제와 도기의 생산 유통, 청자의 발생과 성격 등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