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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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논을 매거나 밭을 맬 때 농사꾼이 부르던 노래. 전라남도의 「모심기 소리」는 「상사소리」, 「농부가」 등 몇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거의 대부분 상사소리형의 소리가 전승되어 왔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영암 지역의 「농부가」는 일종의 농부가형 상사소리를 일컫는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이몽룡이 농군들과 주고받는 상사소리가 그것이다. 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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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제작된 『1872년 지방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영암군 이진진의 지도. 조선 후기 흥선 대원군은 집권과 더불어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제 개정, 군제의 개편, 군사 시설의 확충과 경비의 강화, 군기(軍器)의 정비와 실험이 이어졌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의 실정 파악이 필요하였고, 이의 일환으로 1871년 전국적인 읍지 편찬과 1872년 전국적인 차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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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도기와 분청사기, 백자 등을 구웠던 가마터. 가마는 점력을 가지고 있는 바탕흙으로 형태를 만든 후 이것을 높은 온도로 구워 내는 생산 시설을 말한다. 가마에서 구워 내는 그릇은 바탕흙의 종류와 만드는 과정, 굽는 온도, 유약 종류, 무늬와 장식 기법, 제작지, 용도 등에 의하여 다양하게 나누어지는데,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굽는 온도와 유약의 유무 등으로 토기(土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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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지역 사자봉에 있던 봉수대. 갈두산 봉수(葛頭山 烽燧)는 조선 시대 영암군에 속하였는데 1906년 행정 개편으로 해남군에 편입됨으로서 이후부터는 해남군에 속하게 되었다. 갈두산 봉수는 서남 해안 지역의 해로 상의 요충지에 위치한 입지 조건으로 보아, 수군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두산 봉수가 운영되고 있던 시기에는 동쪽으로부터 ‘강진현 좌곡산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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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였던 해남군 북일면 남창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선소. 선소(船所)는 배를 정박하거나 수리하는 포구를 말한다. 고달도 선소(古達島 船所)는 남창 마을 해월루의 남쪽에 있는데, 고달도는 현재는 전라남도 해남군 남창 마을에 속하나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에 속하였다. 또한 고달도는 달량, 이진, 남창 등으로 불리었다. 고달도는 조선 초기에는 달량이라고 하였다가,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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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을 경유하여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충청남도 금산군으로 연결되는 일반 국도. 전체 총 연장은 317.026㎞이다. 전라남도 나주시 세지면 송지리를 거쳐 영암군 신북면 금수리에서 영암읍 개신리까지 영암군을 통과하여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 이른다. 일반 국도는 우리나라 지도상 남북 방향으로 되어 있는 노선은 홀수 번호를 부여하고 동서 방향으로 되어 있는 노선은 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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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6·25 전쟁 때 전사한 김준병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11월 4일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학산 지서에 보안 주임 경위 김준병 등의 주력 부대와 완도·진도에서 진주한 경찰 약 30명, 의경, 청년 단체 등 6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각 시군에서 집합된 북한군 100여 명이 지서를 습격할 목적으로 기습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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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이 속했던 행정 구역. 나주목은 983년(성종 2) 전국에 설치된 12개의 목(牧) 중 하나이다. 1018년(현종 9)에 지방 제도를 완비하면서 12목을 8목으로 조정할 때에도 주목(主牧)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암군은 나주목의 영군(領郡)이었다. 영암은 지방 제도가 재정비되던 성종 때에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府)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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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제의를 행하던 신사의 터. 남해당지(南海堂址)는 남해신사(南海神祠)의 제의를 행하던 신사 터로, 고려 시대 전라남도 지방의 국가 제사 중의 하나를 모시던 곳이다. 조선 시대의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국사(國祀)를 모신 삼대 해신사(海神祠)를 기록하고 있다. 동해를 수호하는 동해묘(東海廟)를 강원도 양양에, 서해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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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하여 전라남도 서부권 8개 축협에서 생산하는 한우 브랜드. 녹색 한우는 전라남도 서부권의 신안·완도·광주·나주·영암·장성·해남·화순 축협 등 8개 축협과 1,250여 농가가 참여하는 전국 최대 규모 청정 한우 브랜드다. 전라남도에서는 2007년 ‘서부권 한우 광역 브랜드 개발 동의 협약’을 체결하여 참여 조합장 협의회를 개최하고, 광역 브랜드 개발 소위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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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했던 달량진으로 왜구가 상륙하여 침탈했던 여러 사건. 달량진은 현재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으며 해남군과 완도군 달도(達島) 사이의 물목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의 수군진으로, 1406년(태종 6)에 이미 기록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빠른 시기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량의 원래 지명은 달도였는데 완도의 달도와 구분하려고 ‘고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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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 달마산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봉수. 달마산 봉수(達摩山 烽燧)는 조선 시대 영암군에 속했으나, 1906년 해남군에 편입된 뒤로 계속 해남군에 속하게 되었다. 달마산 봉수는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에 처음 기록을 보이고 있는데 완도(莞島) 봉수[전라남도 완도군 군외면 숙승봉]로부터 연락을 받아 관두산 봉수[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성좌동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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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지방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를 반대한 개인과 단체의 저항 운동. 전통적으로 영암은 전라도 지역 교통의 요지이며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그만큼 일본 제국주의 자본의 주요한 침투 대상으로, 강한 경제적 침략의 위협 아래 놓여 있었다. 여기에다 일찍부터 사족의 문화가 발달하고 일제 침략에 저항하는 의병활동이 활발한 고장이었던 만큼 항일 운동의 전통도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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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뽑는 행위. 선거 제도는 민주 정치 과정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으로 의회의 성격, 정당의 특성, 이익 집단의 형태, 정부의 안정성과 나라의 통합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8년 5월 10일 국회 의원 선거에서 선출된 198명의 국회 의원으로 제헌 국회가 구성된 이래 선거 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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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에 있는 정기 시장. 신북장은 신북 시장·월평장이라고도 하며, 3일과 8일에 서는 오일장이다. 일제 강점기 후기에 시종장과 함께 등장한 재래시장이다. 신북장은 삼포천의 상류 남쪽, 신북면 소재지인 월평리 126-3 일원에 있다. 주변은 바다와 상관없는 구릉 지대로 밭과 논이 거의 반반인데, 구릉지 밭에서는 배와 감이 많이 난다.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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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쓰이는 언어 체계와 특이한 언어 현상. 영암 지역에서 쓰이는 영암 지역어는 서남 방언 중에서 전라남도 방언에 속한다. 전라남도 방언은 크게 동부 방언권과 서부 방언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 지역은 다시 남북으로 하위 구획된다. 이러한 하위 구획을 기준으로 본다면 영암 지역어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해남, 강진, 장흥, 보성 서부와 함께 남서부 방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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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에 있는 통일 신라 때의 도기 가마터. 영암 구림리 요지(靈巖 鳩林里 窯址)는 통일 신라 말에 운영되었던 대단위의 도기 생산 유적이다. 학술적 조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간헐적으로 실시되었으나 1987년과 1996년에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행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의 돌정 고개로 불리는 구릉 상에 있다. 이곳은 월출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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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는 버스 운행을 위한 대중 교통 시설. 영암에 버스 터미널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1970년에 한 번의 이전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암 여객 자동차 터미널은 원래는 영암읍 동무리, 현재의 농업 중앙회 협동조합 영암군 지부 주변에 있었으며, 당시에는 영암 정류소라 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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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군(郡). 영암군은 전라남도의 서남해안 지역의 최남단에 위치한 군으로 중국의 주요 항구인 상해, 청도 등과 최단 거리에 있어 중국 대륙 및 동남아시아,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그리고 대불 국가 산업 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를 비롯한 현대 삼호 중공업, 삼호 산업 단지, 대불항 등의 산업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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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영암의 연안 및 내륙에 출몰하였던 일본 해적. 왜구는 13세기 “왜구금주(倭寇金州)”라는 구절과 함께 역사 속에 등장하였다. 고려로 침입한 왜구는 미곡을 실은 조운선 약탈과 인명 살상 등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섬, 연안에 사는 사람들은 연해 및 육지로 이주하여 섬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을 정도였다. 영암도 1350년(고려 충정왕 2)에 순천부에 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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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영암 구림리 요지에서 확인된 국내 최초의 시유 도기. 시유 도기(施釉陶器)는 유약을 바른 도기를 뜻한다. 국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시유 도기는 사적 제338호인 영암 구림리 요지(窯址)[가마터]에서 확인되었다. 이 가마터는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에서 ‘돌정 고개’라고 불리는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구릉은 월출산을 남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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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의 영암읍, 군서면, 덕진면, 도포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 영암군은 고대 국가 성립기에는 대형 독무덤의 분포로 보아 마한 54국 중 하나로 중심권이라 할 수 있다. 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4세기 후반에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남북국 시대에 이르러 757년(경덕왕 16)에 영암군이라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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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년 왜구가 달량진으로 상륙하여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을 비롯한 해남, 진도, 장흥 일대를 침탈한 사건. 을묘왜변(乙卯倭變)은 달량진 사변(達梁鎭事變)이라고도 하는데, 1555년(명종 10) 5월 11일에 시작되었다. 서남해안 지역으로 한정되었으나 거의 전쟁 수준으로 전개되었다. 왜선이 70여 척, 왜구가 6천 명에 이르렀고, 달량을 침범한 후 강진·장흥·완도·진도·영암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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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의병장. 이덕삼(李德三)은 영암 출신으로, 본명은 김덕중(金德仲)이다, 1908년부터 1909년 사이 전라남도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이덕삼은 호남 지역의 의병으로 활동하면서 1908년 9월 11일부터 1909년 3월 1일까지 일본인 26명을 피살하고, 36호의 가옥을 불태웠다. 1909년 3월에서 7월 사이에 각지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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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농민의 계급 의식 고취와 사회주의 운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조직하고자 한 혁명적 농민 조합 운동. 1928년 12월 코민테른 집행 위원회 정치 서기국은 「조선 공산당 재조직에 관한 결정서」, 곧 12월 테제를 채택하였다. 이 12월 테제의 주된 내용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조직하려던 이전 방법을 버리고 공장·농촌으로 파고들어 가 노동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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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운동 협의체. 혁명적 농민 조합을 결성하여 계급 의식을 고취하고 지역 전위 정치 조직의 기반을 만들고자 한 사회주의자들의 협의체이다. 1933년 5월, 해남과 완도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활동가인 김홍배와 황동윤이 각자 자기 지역에서 활동하다 농민 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 운동을 지도할 기관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고 전남 운동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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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왕조 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사상 등 모든 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중세 사회에서 근세 사회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행정 편제, 인구와 성씨, 교통·통신, 경제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 초기 영암 지역의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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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기섭(崔琪燮)[1912~2002]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동구림리(東鳩林里)이다. 1930년대 영암에서 야학과 농민 조합 건설 준비 위원회 활동을 통해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등의 독립운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렀다. 1912년 10월 16일에 태어난 최기섭은 1927년 3월 영암군 구림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