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면 영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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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를 시조로 하고 신후경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거창 신씨(居昌愼氏)의 시조인 신수(愼脩)[?~1101]는 원래 송나라 개봉부 사람이었으나 고려 문종 때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신수가 죽은 뒤 신수의 아들인 신성(愼成)이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내려가 살면서 거창 신씨의 시원이 되었다. 영암 지역의 거창 신씨는 참판공파 후손들이며, 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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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건국에서부터 멸망[918~1392년]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영암군 지역에는 고려 시대에 영암군[영암읍·군서면·덕진면 지역], 곤미현(昆湄縣)[미암면·학산면·삼호면 지역], 야로현(野老縣)[금정면과 나주 세지면 지역], 반남현(潘南縣)[시종면과 나주 반남면 지역]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중 영암군은 지금의 전라남도 서남부 지역의 거점으로 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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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교육은 인간사회가 본디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기능이다. 사회가 있는 곳에는 교육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원시 시대에는 교육 시설이 없었으며, 다만 일상생활 가운데서 생활에 필요한 범위의 지식이나 기술이 전수되고 생활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다만 원시 시대에 제사장은 일반인이 가지고 있지 못한 고도의 지식이나 제사의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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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거창 신씨 집성 마을. 영암의 거창 신씨(居昌愼氏)는 신수(愼脩)[?~1101]를 시조로 하고 신후경(愼後庚)을 입향조로 한다. 신후경이 전주 최씨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사위로 덕진면 영보리에 입향하면서 영암 지역에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고, 신희남(愼喜南)[1517~1591], 신천익(愼天翊)[1592~1661] 등 화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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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있었던 덕진 다리에 얽힌 이야기.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덕진면 경계에는 영암천이 흐르는데, 옛 이름은 덕진천이다. 덕진천에는 덕진교가 놓여 있었고, 덕진교의 서쪽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덕진포 포구였다. 덕진교는 덕진면 덕진리 교변 마을과 영암읍의 역리 마을 사이에 있어 나주에서 영암읍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반드시 통과하여야 한다. 그런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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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덕진 초등학교는 기본 학력을 다지며 새로운 생각을 키우는 어린이를 기른다[智]. 건강한 몸을 만들며 튼튼한 체력을 기르는 어린이를 기른다[體]. 기본 예절을 지키며 넉넉한 마음을 다듬는 어린이를 기른다[德]. 자기 소질을 찾으며 남다른 특기를 가꾸는 어린이를 기른다[技]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과 행복을 가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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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수봉(朴壽奉)[1909~1948]은 영암 출신으로, 본적과 활동지는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德津面)이다. 1932년 덕진면에서 발생한 소작 쟁의에 참여하여,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수봉은 박한기(朴漢己), 박한동(朴漢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 초 영암군 덕진면에는 야학이 개설되어 일제 식민 통치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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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유성(朴裕成)[1907~1958]은 영암 출신으로, 본적과 활동지는 영암군 덕진면(德津面)이다. 1932년 영암 지역의 소작 쟁의에 참여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진상(朴珍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박유성은 1931년 영암군 덕진면에 야학을 개설하고 이듬해 「처(妻)의 후회」라는 연극 공연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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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차내리(次乃里), 보촌리(寶村里), 연산리(連山里), 양계리(兩溪里), 다련리(多蓮里), 다보리(多寶里)를 병합하였고, 연산리의 연(連) 자와 다보리의 보(寶) 자를 따서 연보리(連寶里)라 했다. 연보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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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망동리(望洞里), 영흥리(永興里), 장등리(長嶝里)를 병합하면서 영흥의 영(永) 자와 장등의 등(嶝) 자를 따서 영등리(永嶝里)가 되었다. 영흥리는 마을 근처에 운중반월형(雲中半月形)의 명당이 있어 이곳에 살면 영원히 흥할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장등리는 덕진면 영보리에서 영정(永亭)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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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보리(永保里)는 청암도(靑巖道)[조선 시대에 전라도 나주의 청암역(靑巖驛)을 중심으로 한 역도(驛道)] 찰방이 딸린 영보역(永保驛)이 있어서 영보역, 역촌(驛村), 역몰, 영보촌이라고 불렸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냉천(冷泉), 관곡(寬谷), 내동(內洞), 서당(書堂), 은행정(銀杏亭)을 병합하면서 영보리라 하였다. 영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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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전주 최씨 집성 마을. 영보리의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가 입향한 15세기 초반 이후 영암 지방 사족 활동을 주도하였다. 전주 최씨 집성촌인 영보리는 조선 초기의 학자 최덕지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친 곳이다. 영보리에는 최덕지의 셋째 아들 진사공 최숙(崔淑)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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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후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와 영암읍 역리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고려 성종 대에 전국을 12목으로 나눈 군현제의 확립과 더불어 구체화된 역참제는 현종 대에 와서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驛)으로 완성되었다. 이때 영암 영보역의 경우는 승라주도(昇羅州道)에 속한 30개 역 중의 하나로 나주의 청암도역 관할에 속하였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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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일어난 시위 사건. 영암의 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청년들이 모여 지주의 소작권 이동을 거부하고 지주의 횡포와 일제의 지배를 반대하며 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1932년 영암 공산주의자 협의회는 당시 농민 문제의 핵심이었던 소작권의 잦은 이동을 막고 농민의 권익을 보호함으로써 지지자들을 확대하려 하였다. 이들은 1932년 6월 4일 영보정(永保亭)에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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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있는 녹동 서원과 관련된 목판과 고문서. 녹동 서원(鹿洞書院) 소장 목판 및 고문서류는 녹동 서원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1868년 서원 훼철 이후 목판각(木板閣)과 합경재(合敬齋)로 이관해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녹동 서원은 영압읍 교동리에 위치해 있고, 목판각과 합경재는 덕진면 영보리에 위치하고 있다. 녹동 서원은 1630년(인조 8)에 존양사(存養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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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있는 조선 후기 이래 영암의 대표적인 집성촌. 영암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마을 영보는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한 마을로, ‘영보 12동네’로 구성되어 있다. 영보 12동네는 내동, 서당동, 관곡, 참새굴[냉천], 노로동, 솔안, 홍암, 장동리, 운곡, 송석정, 선암, 세류정을 말한다. 이를 행정 구역 기준으로 보면, 서당동과 내동은 영보 1구, 관곡과 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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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암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운곡(雲谷) 마을의 운(雲) 자와 선암(船岩) 마을의 암(岩) 자를 따서 운암리(雲岩里)라 하였다. 또한 덕진면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고, 오봉산(五峰山) 기슭이라 항시 구름이 끼고 암석이 많아서 운암리라고 했다고도 전해진다. 운암리의 운곡 마을은 선암 위에 있는 마을로 마을에 구름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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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이루어진 유학과 관련된 제반 활동. 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예로부터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의 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유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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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작을 시조로 하고 최덕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순작(崔純爵)이 시조이다. 최순작의 후손 최수강(崔秀岡)이 고려 말에 낙향해, 후손들이 최수강을 중시조로 삼고 완산(完山)[현재의 전라북도 전주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는 『동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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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같은 성(姓)과 본관(本貫)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집성촌은 한 성씨가 주도하는 동족 마을을 포함해 나타나는 여러 성씨들이 모인 이성 잡거(異姓雜居) 형태의 촌락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동족 촌락, 동족 부락, 동성 촌락, 동성 마을, 동족 마을이라고도 한다. 영암 지역의 집성촌에 대한 기록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식민지 지배를 목적으로 조사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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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규철(崔圭哲)[1913~1992]은 영암 출신으로,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덕진면(德津面) 영보리(永保里)이다. 1932년에 소작 쟁의를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최규철은 1932년 3월 김판권(金判權)·최판옥(崔判玉) 등의 동지들과 함께 덕진면 운암리(雲岩里) 지역 지주들의 소작권 이전 횡포에 항거하여 운암리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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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존부를 시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영암에 세거하는 성씨 가운데 하나인 해남 윤씨는 1832년에 발행된 『영암읍지(靈巖邑誌)』에 지역의 성씨로 기록되어 있으나 영암 입향조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제 강점기 때인 1930~1940년경에 윤용하(尹龍河)가 외가가 있는 덕진면 영보리로 이주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남은 현재 전라남도 해남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