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논을 매거나 밭을 맬 때 농사꾼이 부르던 노래. 전라남도의 「모심기 소리」는 「상사소리」, 「농부가」 등 몇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거의 대부분 상사소리형의 소리가 전승되어 왔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영암 지역의 「농부가」는 일종의 농부가형 상사소리를 일컫는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이몽룡이 농군들과 주고받는 상사소리가 그것이다. 호남...
-
조선 시대 영암 지역 사자봉에 있던 봉수대. 갈두산 봉수(葛頭山 烽燧)는 조선 시대 영암군에 속하였는데 1906년 행정 개편으로 해남군에 편입됨으로서 이후부터는 해남군에 속하게 되었다. 갈두산 봉수는 서남 해안 지역의 해로 상의 요충지에 위치한 입지 조건으로 보아, 수군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두산 봉수가 운영되고 있던 시기에는 동쪽으로부터 ‘강진현 좌곡산 봉수-...
-
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해 영산강, 서남 해안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전승해 오는 민속놀이. 강강술래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전승·발전해 온 놀이 겸 노래를 말한다. 인근 전라남도 진도, 해남 지역에 전승되던 강강술래가 1966년 2월 15일 국가 무형 문화재 제8호로 지정됨에 따라 강강술래의 중심이 진도, 해남 쪽으로 급속하게 쏠리게 되었다.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영암군에서...
-
고려 말 공도정책으로 지금의 영암군 시종면으로 이거되었던 진도군의 행정구역. 고려 말 왜구의 창궐로 인하여 공도 정책(空島政策)[섬에 살던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서남 해안에서는 흑산도, 압해군, 장산현, 진도군이 해당되었다. 진도군의 경우는 1350년(충정왕 2)에 당시 나주 땅이었던 종남면의 월량지(月良只)[지금의 영암군 월악리]로 이거되었다. 『신증동국...
-
조선 후기 영암에 유배 온 문신.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이다. 서인으로서 2차례의 예송(禮訟) 때 남인과 대립했다. 1675년(숙종 1)에 남인인 윤휴(尹鑴), 허적(許積), 허목(許穆) 등의 공격으로 관직을 빼앗겨 전라도 영암에 유배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했던 김상...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6·25 전쟁 때 전사한 김준병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11월 4일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학산 지서에 보안 주임 경위 김준병 등의 주력 부대와 완도·진도에서 진주한 경찰 약 30명, 의경, 청년 단체 등 6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각 시군에서 집합된 북한군 100여 명이 지서를 습격할 목적으로 기습하여 왔다....
-
1970년대 중반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한 나불도의 주민들이 영산호 국민 관광지 조성 계획에 따라 삶의 터전을 다른 지역으로 옮긴 일. 나불도는 외도·문도·구와도·고마도·서도 등과 함께 영암군에 딸린 여섯 개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준공되면서 육지가 된 곳이다. 1970년대까지 이 섬에는 두 개 마을에 53가구[농가 23가구, 반농반어(半農半...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제의를 행하던 신사의 터. 남해당지(南海堂址)는 남해신사(南海神祠)의 제의를 행하던 신사 터로, 고려 시대 전라남도 지방의 국가 제사 중의 하나를 모시던 곳이다. 조선 시대의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국사(國祀)를 모신 삼대 해신사(海神祠)를 기록하고 있다. 동해를 수호하는 동해묘(東海廟)를 강원도 양양에, 서해를 수...
-
조선 시대에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했던 달량진으로 왜구가 상륙하여 침탈했던 여러 사건. 달량진은 현재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으며 해남군과 완도군 달도(達島) 사이의 물목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의 수군진으로, 1406년(태종 6)에 이미 기록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빠른 시기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량의 원래 지명은 달도였는데 완도의 달도와 구분하려고 ‘고달도...
-
전라남도 영암 지역 달마산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봉수. 달마산 봉수(達摩山 烽燧)는 조선 시대 영암군에 속했으나, 1906년 해남군에 편입된 뒤로 계속 해남군에 속하게 되었다. 달마산 봉수는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에 처음 기록을 보이고 있는데 완도(莞島) 봉수[전라남도 완도군 군외면 숙승봉]로부터 연락을 받아 관두산 봉수[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성좌동 관...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있었던 덕진 다리에 얽힌 이야기.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덕진면 경계에는 영암천이 흐르는데, 옛 이름은 덕진천이다. 덕진천에는 덕진교가 놓여 있었고, 덕진교의 서쪽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덕진포 포구였다. 덕진교는 덕진면 덕진리 교변 마을과 영암읍의 역리 마을 사이에 있어 나주에서 영암읍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반드시 통과하여야 한다. 그런데 조선...
-
임양저를 시조로 하고 임만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선산 임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입향조는 선산 임씨 중시조인 임만(林蔓)으로, 1388년에 영암에 입향한 이래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였다. 선산 임씨는 신라 경순왕의 손주 사위인 태사공(太師公) 임양저(林良貯)를 시조로 하고 있다.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려 하자 그 부당함을 고하...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성틀봉에 있는 토성 터. 성틀봉(성틀峰) 토성(土城) 터가 자리 잡고 있는 시종면(始終面)은 신북면과 함께 백제 때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에 속해 있었다.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반나부리현이 반남군(潘南郡)으로 이름과 격이 달라지면서 큰 고을을 이루었다. 금정면 지역에 있던 아로곡현(阿老谷縣)이 야로현(野老縣)으로, 미암면·학산면·서...
-
조선 시대에 영암군에 속하였던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등에 있었던 수군진. 한반도의 서남 끝단에 위치해 있는 송지 어란은 고대부터 한중일 국제 해상로뿐만 아니라 제주도 해로와 조운로의 중간 기착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어란포진은 조선 시대 수군 만호진이 머물렀던 곳인데, 두 차례 이동되어 현재의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정착하였다. 첫 번째는 해남현 화산면 연곡리 삼...
-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쓰이는 언어 체계와 특이한 언어 현상. 영암 지역에서 쓰이는 영암 지역어는 서남 방언 중에서 전라남도 방언에 속한다. 전라남도 방언은 크게 동부 방언권과 서부 방언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 지역은 다시 남북으로 하위 구획된다. 이러한 하위 구획을 기준으로 본다면 영암 지역어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해남, 강진, 장흥, 보성 서부와 함께 남서부 방언의...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 서남해 지역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영암은 바다와 강, 산이 어우러진 풍요로운 자연 환경과 내륙과 도서·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고대부터 이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고대에는 옹관 고분 문화권의 중심지였고, 고려 시대에는 주변의 8개 군현을 아우르는 지역 거점이었다. 조선 시대 이후 주변 지역이 분리되며...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별암리 사이에 있는 방조제. 영암 금호 방조제가 지나는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호리 금호도(錦湖島)에서 이름을 따 왔다. 해남군 산이면 구성리 산17번지, 민가도에 영암·금호 방조제 준공 기념탑이 조성되어 있다. 금호도는 목화를 생산하여 돈을 묶는다는 뜻으로 속금도라 칭했다는 설이 있으나, ‘만 사이에 있는 섬’을 의미한다....
-
전라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군(郡). 영암군은 전라남도의 서남해안 지역의 최남단에 위치한 군으로 중국의 주요 항구인 상해, 청도 등과 최단 거리에 있어 중국 대륙 및 동남아시아,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그리고 대불 국가 산업 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를 비롯한 현대 삼호 중공업, 삼호 산업 단지, 대불항 등의 산업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어...
-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영암의 연안 및 내륙에 출몰하였던 일본 해적. 왜구는 13세기 “왜구금주(倭寇金州)”라는 구절과 함께 역사 속에 등장하였다. 고려로 침입한 왜구는 미곡을 실은 조운선 약탈과 인명 살상 등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섬, 연안에 사는 사람들은 연해 및 육지로 이주하여 섬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을 정도였다. 영암도 1350년(고려 충정왕 2)에 순천부에 왜구...
-
백제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의 영암읍, 군서면, 덕진면, 도포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 영암군은 고대 국가 성립기에는 대형 독무덤의 분포로 보아 마한 54국 중 하나로 중심권이라 할 수 있다. 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4세기 후반에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남북국 시대에 이르러 757년(경덕왕 16)에 영암군이라 개칭...
-
1555년 왜구가 달량진으로 상륙하여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을 비롯한 해남, 진도, 장흥 일대를 침탈한 사건. 을묘왜변(乙卯倭變)은 달량진 사변(達梁鎭事變)이라고도 하는데, 1555년(명종 10) 5월 11일에 시작되었다. 서남해안 지역으로 한정되었으나 거의 전쟁 수준으로 전개되었다. 왜선이 70여 척, 왜구가 6천 명에 이르렀고, 달량을 침범한 후 강진·장흥·완도·진도·영암 등을...
-
전라남도가 후원하고, 목포 대학교 주최로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서 열린 제55회 세계 식생 과학 대회. 전라남도와 국립 목포 대학교의 주최로 세계적인 식생 과학 연구자들의 대표 학술 대회인 제55회 세계 식생 과학 대회가 2012년 12월 23일~28일에 호텔 현대 목포에서 개최되었다. 세계 식생 과학 대회는 세계 70개국 1,5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제 식생 학회[IAVS...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왕조 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사상 등 모든 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중세 사회에서 근세 사회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행정 편제, 인구와 성씨, 교통·통신, 경제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 초기 영암 지역의 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