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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전해 오는 한석봉과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영암군에서는 석봉 한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승되고 있다. 「죽림 정사에서 한석봉을 길러 낸 어머니」는 한석봉의 교육을 위해 영암에 온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팔며 아들을 뒷바라지한 이야기이다. 2007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발행한 『영암 한석봉 관련 유적 조사』와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의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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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에서 활동한 가사 작가인 박이화의 시문집. 박이화(朴履和)[1739~1783]는 함양 박씨로, 자는 화이(和而)이며, 호는 구계(龜溪) 또는 용계(龍溪)이다. 시문에 매우 뛰어났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않고 고향인 영암군 군서면 구림 마을에 살았다. 박이화의 유저인 『구계집』에는 영암 구림 마을의 주변 경치를 노래하는 「낭호신사(郎湖新詞)」 외 다수의 작품이 함께 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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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구(子具),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아버지는 이성 현감(利城縣監)을 지낸 학천군(鶴川君) 김극조(金克祧), 어머니는 천안 전씨(天安全氏)이다. 김완(金完)[1577~1635]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당시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같은 해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 방어사 고언백(高彦伯)의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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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서예가·시인. 백진남(白振南)[1564~1618]은 문장과 필체가 매우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씨와 시를 사서 모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본관은 해미(海美), 자는 선명(善鳴), 호는 송호(松湖)이다. 아버지는 최경창(崔慶昌)[1539~1583], 이달(李達)[1539~1618]과 더불어 삼당시인(三唐詩人) 가운데 한 사람인 옥봉(玉峯) 백광훈(白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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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신·의병장. 이유길(李有吉)[1576~1619]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으며, 명나라 원군으로 출정하여 후금과 싸우다 요동백(遼東伯) 김응하(金應河)와 함께 전사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지(有之)이다. 할아버지는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봉된 이후백(李後白),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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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신. 이후백(李後白)[1520~1578]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호남(湖南)에서 명망(名望)이 높았으며, 호남 암행어사·대사간·이조 판서·호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종계변무(宗系辨誣)[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간 중국 명나라에 잘못 기록된 이성계의 세계(世系)를 고쳐 달라고 주청하던 일]의 공으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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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침입하여 영암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까지 포함하지만, 때로는 1차와 2차를 나누어 1차는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부르며 2차는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 칭하기도 한다. 1591년 3월 일본이 조선에 전달하였던 요구는 가도입명(假道入明), 곧 ‘명으로 가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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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인. 조일주(曺一周)는 머리가 영특하고 성격이 온화했지만 사람됨이 바르고 엄격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매우 아꼈던 문하생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정한재(靖閒齋)이다.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의 손자로, 아버지는 조경보(曺敬甫)이다. 조일주(曺一周)는 18세에 송시열의 문하에서 배웠는데, 송시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