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는 마한의 소국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3세기 후반에서 5세기 무렵에는 대형 옹관을 매장 시설로 활용한 세력이 시종면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초기의 대형 옹관묘는 시종면을 비롯하여 학산면, 금정면 등에서 발견되고, 후기의 대형 옹관 고분은 시종면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삼국 시대에 들어와 영암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에 있는 산성 터. 궁성산성(弓城山城)에 대한 문헌 기록과 일제 강점기까지의 조사 기록은 전혀 찾아지지 않는다. 궁성산성이 있었던 금정면(金井面) 지역은 삼국 시대 때부터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이다. 백제 때 아로곡현(阿老谷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야로현(野老縣)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청용리 동산 마을에 있는 산성 터. 금정면(金井面)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이다. 백제 때 아로곡현(阿老谷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야로현(野老縣)으로 이름을 바뀌면서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나주목(羅州牧)에 편입된 이래 조선 시대까지 계속 나주목 소속으로 남아 있었다...
삼국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하여 한반도 중부와 서남부 지역에 있었던 고대 국가. 백제 건국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온조 설화에 따르면 기원전 18년에 부여 또는 고구려 계통의 유민과 한강 유역의 토착 세력이 결합하여 성립되었다. 최초의 백제의 이름은 마한 소국 십제(十濟)였다. 마한으로부터 100리의 땅을 할애받아 십제를 세웠다. 백제는 한강 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한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성틀봉에 있는 토성 터. 성틀봉(성틀峰) 토성(土城) 터가 자리 잡고 있는 시종면(始終面)은 신북면과 함께 백제 때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에 속해 있었다.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반나부리현이 반남군(潘南郡)으로 이름과 격이 달라지면서 큰 고을을 이루었다. 금정면 지역에 있던 아로곡현(阿老谷縣)이 야로현(野老縣)으로, 미암면·학산면·서...
백제 시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 아로곡현(阿老谷縣)은 백제 때 지금의 영암군 금정면과 나주시 세지면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이다. 치소는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마을이다. 백제의 아로곡현은 당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노신(鹵辛)으로 개칭하여 동명주에 딸린 영현으로 삼았다. 757년(경덕왕 16)에 야로현(野老縣)으로 개칭되어 반남군에 딸린 현(縣)이...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노리(安老里)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다만 백제 때 아실 또는 안로, 안로촌이라 하였으며, 고려 시대에 안로현(安老縣)으로 개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주변의 마을을 병합하면서 안노리라 했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의 마을 명칭 중에서 안노(安老)를 확인할 수 있다. 안노리는 백제 때 아로...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 서남해 지역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영암은 바다와 강, 산이 어우러진 풍요로운 자연 환경과 내륙과 도서·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고대부터 이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고대에는 옹관 고분 문화권의 중심지였고, 고려 시대에는 주변의 8개 군현을 아우르는 지역 거점이었다. 조선 시대 이후 주변 지역이 분리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