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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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도기와 분청사기, 백자 등을 구웠던 가마터. 가마는 점력을 가지고 있는 바탕흙으로 형태를 만든 후 이것을 높은 온도로 구워 내는 생산 시설을 말한다. 가마에서 구워 내는 그릇은 바탕흙의 종류와 만드는 과정, 굽는 온도, 유약 종류, 무늬와 장식 기법, 제작지, 용도 등에 의하여 다양하게 나누어지는데,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굽는 온도와 유약의 유무 등으로 토기(土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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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 구역. 백제 때 고미현(古彌縣)은 영암군의 미암면, 학산면, 삼호읍, 서호면 일대에 있었으며, 고미현의 치소는 지금의 영암군 미암면 미암리 향양 마을 인근으로 전해지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영암군 조에 의하면, “[영암군의] 옛 속현(屬縣)이 넷이니, 곤미(昆湄)는 본래 백제의 고미현(古彌縣)이었다[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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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이 속했던 행정 구역. 나주목은 983년(성종 2) 전국에 설치된 12개의 목(牧) 중 하나이다. 1018년(현종 9)에 지방 제도를 완비하면서 12목을 8목으로 조정할 때에도 주목(主牧)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암군은 나주목의 영군(領郡)이었다. 영암은 지방 제도가 재정비되던 성종 때에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府)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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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과 나주시 반남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 구역. 백제의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은 영암군 시종면을 비롯하여 나주시 반남면, 공산면, 동강면 일대에 있었다. 치소는 지금의 반남면 소재지에 있었으며, 주산인 자미산의 자미산성에서는 백제 시기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반나부리’는 ‘큰 마을[大村]’, ‘큰 읍[大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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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을 비롯하여 나주시 반남면에 있었던 행정 구역. 반남군은 본래 백제의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 반나(半那)로 고쳐 대방주(帶方州)의 영현으로 삼았다. 757년(경덕왕 16)에는 반남군으로 승격되어 영암 지역의 야로(野老)[금정면]와 곤미(昆湄)[미암면]의 두 현을 함께 다스리도록 하였다. 반남군 치소의 주산(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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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과 나주시 반남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 반남현(潘南縣)은 본래 백제의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었는데,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멸한 뒤 반나로 고쳐 대방주(帶方州)의 영현으로 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는 반남군으로 승격되어 영암 지역의 야로(野老)[영암군 금정면]와 곤미(昆湄)[영암군 미암면]의 두 현을 함께 다스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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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의 영암읍, 군서면, 덕진면, 도포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 영암군은 고대 국가 성립기에는 대형 독무덤의 분포로 보아 마한 54국 중 하나로 중심권이라 할 수 있다. 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4세기 후반에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남북국 시대에 이르러 757년(경덕왕 16)에 영암군이라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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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왕조 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사상 등 모든 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중세 사회에서 근세 사회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행정 편제, 인구와 성씨, 교통·통신, 경제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 초기 영암 지역의 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