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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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山里- |
이칭/별칭 | 용산리 농악,용산리 마당밟이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용산 마을 |
집필자 | 송기태 |
놀이 장소 | 용산리 매구 - 전남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 용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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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속놀이 |
노는 시기 | 격년 음력 1월 14일 |
관련 의례 행사 | 당산제|마당밟이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 용산 마을에서 정월에 액운을 물리치고, 풍요와 복을 기원하며 세시 때 행하는 농악.
[개설]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 용산 마을은 덕진면 일대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과거에는 50~60호가 거주했으나 2013년 현재는 3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용산 마을에서는 매년 당산제와 당산굿, 샘굿, 마당밟이, 밤굿 등을 진행해 왔다.
[연원]
용산 마을은 덕진면 일대에서 가장 큰 마을로 농악 전승이 왕성한 마을이었다.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면서 당산굿을 치고 샘굿과 마당밟이, 밤굿 등을 행하던 것을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당산제와 농악의 전통이 오래되었지만 구체적인 유래와 시기는 알 수 없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덕진면 용산 마을에서는 농악을 매구라고 부른다. 농악의 악기와 치배[타악기를 치는 사람] 구성은 기수, 악기수, 잡색으로 구분된다. 깃발은 농기와 영기가 있다. 농기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이다. 영기에는 ‘영(令)’이라고 쓰여 있고, 2개가 사용되며 농악대의 질서를 상징한다.
악기수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으로 꽹과리 2명[상쇠, 종쇠], 징 1명, 장구 2명, 북 2명, 소고 6~7명으로 구성된다. 악기수는 모두 농악대 복장으로 흰옷에 삼색 드림을 매고 고깔을 쓴다.
잡색으로는 포수, 양반광대, 각시광대, 조리 광대가 있다. 포수는 총을 들고 꿩을 매단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총 쏘는 시늉을 한다. 양반광대는 양반 복색에 두루마기와 갓을 쓰고, 얼굴에 수염을 단다. 각시광대는 치마저고리에 고깔을 쓰고, 손수건을 든다. 조리 광대는 승복 같은 옷에 바가지로 만든 가면을 쓰고, 짚으로 만든 삿갓 모양의 모자를 쓴다. 특히 조리 광대는 춤을 추고 다니면서도 농악대의 대열을 점검하고, 진열을 정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총 대장인 도천방은 평복을 입고, 마당밟이의 수입을 관리하며, 농악 치배들의 연행 장소를 결정한다. 놀이 장소는 마을의 당산과 우물, 마을 주민들의 집이다.
[놀이 방법]
용산리 매구 는 음력 정월 14일 저녁 당산제를 기해 시작된다. 당산제를 지내면서 당산굿을 치고, 공동 우물로 이동해 샘굿을 친다.
다음날부터 마을 주민들의 집을 집집마다 방문해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마당밟이를 진행한다. 마당밟이는 마을길을 이동하면서 대문을 거쳐 집안 부엌, 안방, 마당, 장독대 등을 돌아다니며 행한다.
농악 치배들이 도착하면 집주인은 상에 쌀과 초를 올려놓고, 농악대는 굿을 해 집안의 액운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한다. 또한 집주인은 농악대가 농악을 치는 중간에 쉴 수 있도록 음식과 술을 대접한다. 마당밟이 과정에서 밤이 되면 마당에 불을 피우고, 밤굿을 치면서 흥겹게 논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덕진면 용산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 명절을 기하여 당산굿과 샘굿으로 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고, 마당밟이를 통해 집안의 일 년 액막이를 했다. 1980년대에는 김종순이 기획하고 서양심이 상회를 하여 주부 대학에서 농악을 배운 여자들로 농악대를 구성해 영암 군민의 날 행사에 도포면 대표로 10여 년 동안 참석하기도 했다.
[현황]
해마다 농악을 연행하고 있으나, 전승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해 당산굿과 샘굿 정도만을 전승하고 있다. 마을의 마당밟이나 밤굿 등은 중단되었고, 여자들끼리 참가했던 영암 군민의 날 행사도 2000년대 말부터는 참가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