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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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甫 |
이칭/별칭 | 광종(光宗),동진 대사(洞眞大師),옥룡선화상(玉龍禪和尙)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최연식 |
출생 시기/일시 | 869년 - 경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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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서품 시기/일시 | 886년 - 경보 화엄사에서 구족계 받음 |
수학 시기/일시 | 892년 - 경보 당나라에 유학하여 선을 수학 |
활동 시기/일시 | 921년 - 경보 광양 옥룡사에 주석 |
활동 시기/일시 | 936년 - 경보 고려 태조의 초청으로 개경으로 가서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948년 - 경보 사망 |
출생지 | 경보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구림 마을 |
성격 | 승려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왕사 |
[정의]
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까지 활동했던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승려.
[개설]
구림(鳩林) 출신으로 속성은 김씨, 자는 광종(光宗). 경보(慶甫)[869~948]는 법명이다. 아버지는 알찬(閼粲) 김익량(金益良)이며, 어머니는 박씨이다. 출생지 구림에 대해서는 영암 구림으로 보는 견해와 계림(鷄林), 즉 경주의 이칭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활동 사항]
경보는 어려서 부인산사(夫人山寺)[현 대구광역시 부인사]에서 출가하였다. 현재의 전라남도 광양의 백계산(白鷄山)으로 옮겨 도승(道乘)[도선으로 추정]의 제자로 선(禪)과 율(律)을 익혔고, 18세에 월유산(月遊山)[현 지리산] 화엄사(華嚴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여러 해 동안 수행하다가 성주사의 무염 대사(無染大師)와 굴산사의 범일 대사(梵日大師) 등을 차례로 친견하여 법문을 들었다.
892년(신라 진성여왕 6)에 중국으로 가서 수행하였는데, 무주(撫州)[강서성 무주부] 소산(踈山)의 광인 화상(匡仁和尙)을 만나서 심인(心印)을 전해 받았고, 강서(江西)로 가서 노선 화상(老善和尙)을 배알하고 법문을 전해 들었다.
921년(경명왕 5)에 30여 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전라도 임피군(臨陂郡)[현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에 이르렀는데, 후백제의 견훤이 전주 남쪽의 남복 선원(南福禪院)에 머물기를 청하였다. 이후 다시 백계산 옥룡사(玉龍寺)로 옮겼고, 936년 견훤이 죽고 후삼국이 고려로 통일되자 고려 태조(太祖)가 왕사(王師)로 모셨다. 그 뒤 혜종(惠宗)과 정종(定宗)의 왕사가 되었으며, 정종의 명으로 개경에서 머물다가 옥룡사로 돌아와 상원(上院)에서 머물다 입적하였다. 나이 80세, 법랍 62세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천통(泉通)과 현가(玄可)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정종은 경보를 옥룡선화상(玉龍禪和尙)이라 부르고, 동진 대사(洞眞大師)라는 시호와 보운(寶雲)이라는 탑명을 내렸다. 958년에 건립된 ‘동진 대사 보운 탑비(洞眞大師寶雲塔碑)’는 김정언(金廷彦)이 비문을 지었으며 제자인 현가가 쓰고 계묵(繼默)이 새겨서 옥룡사에 세웠다. 현재 옥룡사 터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