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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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愼汝誼 |
이칭/별칭 | 사선(士善),매당(梅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문혜지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사선(士善), 호는 매당(梅堂)이다. 통례(通禮) 신후경(愼後庚)의 후예이고, 감사(監司) 신기(愼幾)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봉사(奉事) 신원개(愼元凱)이다. 부인은 함평 이씨(咸平李氏)로 생원 이유회(李惟誨)의 딸이며, 동생으로는 신여훈(愼汝訓)·신여원(愼汝謜)·신여눌(愼汝訥)이 있다.
신여의(愼汝誼)[1567~1649]는 25세 때인 1591년(선조 24)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에 생원(生員) 3등 20위로 합격하였다. 벼슬은 행의(行誼)로 천거되어 선공 참봉(繕工參奉)을 제수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亂) 때 의병을 일으켰는데, 이는 『호남모의록(湖南募義錄)』에 기재되어 있다. 또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도 동생 신여원·신여눌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금산(錦山)에 이르렀으나, 조정이 청과 화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부대를 해산한 뒤 영암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며 일생을 마쳤다.
묘소가 영암 사곡(槎谷)에 있다고 전하나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조정에서 신여의의 창의를 가상히 여겨 아들 신령(愼昤)을 금부도사(禁府都事)에 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