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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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珽 |
이칭/별칭 | 대규(大圭),기정(棄井),동원(東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탁현진 |
출생 시기/일시 | 1568년 - 최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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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최정 생원시에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최정 진사시에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610년 - 최정 『난후 문고 수록지』 간행·최덕지 영정 개정 |
활동 시기/일시 | 1630년 - 존양사 건립 |
활동 시기/일시 | 1635년 - 최정 영보정 중건 |
몰년 시기/일시 | 1639년 - 최정 사망 |
출생지 | 최정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
거주|이주지 | 최정 거주지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
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정의]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인·학자.
[가계]
자는 대규(大圭), 호는 기정(棄井) 또는 동원(東園)이다. 조선 전기 예문관 직제학(藝文館直提學)을 지낸 최덕지(崔德之)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최응봉(崔應鳳)이며, 형제로는 최수(崔璲)가 있다.
[활동 사항]
최정(崔珽)[1568~1639]은 1605년(선조 38)에 을사(乙巳) 증광시(增廣試) 진사 3등 27위로 합격하였으며, 같은 해 생원시에서 2등 5위로 합격하였다.
1601년에 임진왜란 당시 손상되었던 최덕지의 영정을 다시 단장하였고, 1630년 향사우(鄕祠宇)인 존양사(存養祠)를 건립하였다. 1635년에는 신천익(愼天翊)과 함께 최덕지를 기리고자 만들어진 영보정(永保亭)을 중건하였다.
[학문과 저술]
1610년 7대조였던 최덕지의 시문을 모아 『난후 문고 수록지(亂後文稿收錄誌)』를 간행하였다.